누가복음 2장 21절부터 38절까지
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이번에 함께 공부할 성경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후 둘째 주 초부터 약 40일이 될 때까지 그분에게 일어난 일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시고 이름을 받으신 일,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데려가셔서 하나님께 드려진 일, 시므온의 예언과 여선지자 안나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선포한 말씀을 포함한다.
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 끝을 둘러싸고 있는 포피를 잘라내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남자아이에게 할례를 행하라는 율법은 레위기 12장 2절부터 3절까지에 기록되어 있다. 이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태어나는 모든 남자아이는 태어난 날이 언제이든지 태어난 후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 여덟째 날이 안식일이라 할지라도 할례는 행해졌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행해진 할례는 그보다 400여 년 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그에게 명하신 것이었다. 이에 관한 내용은 창세기 17장에 기록되어 있다.
그때 아브라함은 99세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와 언약을 세우시고 그의 후손을 크게 번성하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람의 이름을 ‘많은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를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세우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에게 가나안 땅 전체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언약의 표징은 그의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와 돈으로 사 온 남자 종까지도 할례를 받는 것이었다.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는 태어난 후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으신 사건은 그분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심을 나타내며, 또한 그분께서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서 태어나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음을 나타낸다(갈라디아서 4장 4절).
성경은 왜 반드시 여덟째 날에 할례를 행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의학 지식에 따르면, 아기가 태어난 후 여덟째 날에는 모유를 통해 아기의 면역력이 증가한다. 또한 혈액 응고를 돕는 두 가지 물질인 비타민 K와 프로트롬빈(Prothrombin)이 출생 후 여덟째 날에 아기의 몸 안에 가장 많이 존재한다.
비타민 K는 출생 후 다섯째 날부터 일곱째 날 사이에 체내에서 생성되기 시작한다. 프로트롬빈은 출생 후 여덟째 날에 가장 높은 수치인 약 110%까지 증가한다. 이 두 물질이 몸 안에 충분하지 않으면 할례를 받은 아기가 출혈을 멈추지 못하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하기에 가장 적절한 때를 아셨으며, 그 시기를 정하여 주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세우신 언약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온 인류와 세우실 언약, 곧 새 언약에 관한 영적인 의미를 지닌다(마태복음 26장 28절; 누가복음 22장 20절). 새 언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그분의 속죄의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새 생명을 살아가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한 죄의 대속의 값이 된다.
의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할례는 남자의 생식기를 위생적으로 관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 남자의 생식기 끝을 둘러싸고 있는 포피 아래에는 분비물과 이물질이 쌓이기 쉬워 악취가 나거나 감염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포피를 제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포피를 뒤로 젖혀 생식기를 씻을 수 있으므로 생식기의 위생을 위해 할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성경의 여러 구절은 할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죄의 본성을 잘라 내는 것을 상징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한다. 할례는 또한 하나님의 백성이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와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룩하게 될 것을 상징한다.
신명기 10장 16절에: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예레미야 9장 25절에: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로마서 2장 26절과 27절에: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제도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것이 아니냐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로마서 2장 28절과 29절에: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찌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고린도전서 7장 19절에: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갈라디아서 5장 6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장 15절에: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은 자 뿐이니라
빌립보서 3장 3절에: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당이라
골로새서 2장 11절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이스라엘 백성은 일반적으로 남자아이가 태어난 후 여덟째 날 이른 아침에 할례를 행했다. 보통은 아버지가 할례를 맡았지만, 모세의 아내의 경우처럼 어머니가 행하는 때도 있었다. 또한 부모가 그 지역에서 할례를 전문적으로 행하는 사람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다.
할례를 행한 직후에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 주었다. 일반적으로 어머니가 자기 아이의 이름을 지을 영예를 가졌다.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에는 마태복음 1장 21절과 25절에 따르면 요셉이 그분의 이름을 지었다. 그러나 실제로 ‘예수’라는 이름은 그분께서 처녀 마리아의 태중에 잉태되시기 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미리 알려 준 이름이었다(누가복음 1장 31절).
22 모세의 법대로 결례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레위기 12장에 기록된 출산에 관한 율법에 따르면, 마리아는 칠 일 동안 부정한 상태에 있어야 했으며, 그 후 정결하게 되기까지 삼십삼 일 동안 정결하게 하는 기간을 지내야 했다. 이 사십 일 동안 마리아는 거룩한 물건이나 거룩한 음식에 손을 대서는 안 되었으며, 성전에 들어갈 수도 없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부정함은 죄를 지음으로 인한 영적인 부정함이 아니라, 몸에서 피와 분비물이 나오고 건강이 약해져 전염병을 옮길 수도 있는 육체적인 부정함을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결하게 하는 기간은 일정 기간 동안 쉬면서 몸이 회복되도록 하고 물로 씻는 것을 말한다.
“그들의 정결하게 하는 날들이 다 차매”라는 말씀은 요셉과 마리아의 가족이 출산에 관한 율법에 따라 정해진 사십 일을 모두 지켰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는 아이를 낳은 후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마리아의 맏아들인 아기 예수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으로 데려갔다. 이러한 봉헌은 출애굽기 13장 2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행해진 것이었다.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된 자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는 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별되었다는 뜻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맏아들과 가축 떼 가운데 처음 태어난 수컷을 따로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했던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육체적인 면에서부터 영적인 면에 이르기까지 구원하실 것을 나타내는 표징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자신의 맏아들이라고 부르셨다(출애굽기 4장 22절).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가운데서 이스라엘 백성을 먼저 택하셨기 때문이다.
육체적인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집트 땅의 모든 맏아들을 죽게 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 사람들의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게 하셨다. 영적인 면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맏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희생하심으로 그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그들을 죄의 종살이에서 구원하실 것을 나타내셨다.
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대로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 둘로 제사하려함이더라
이 봉헌은 요셉과 마리아가 부유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레위기 12장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어머니는 정결하게 하는 날들이 차면 하나님께 제물을 드려야 했다. 그 제물은 일 년 된 어린양 한 마리와 어린 집비둘기나 어린 산비둘기 한 마리였다. 그러나 어린양을 드릴 형편이 되지 않는 사람은 산비둘기 두 마리나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릴 수 있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셨다. 태어나실 때부터 그분은 가난한 삶을 사셨다. 그러므로 가난은 죄를 지은 결과가 아니다. 일부 은사주의와 오순절주의 교파에서 가르치는 것처럼 가난이 죄의 결과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부를 탐하는 마음이 죄를 짓게 하며, 그 결과 사람이 멸망에 이를 수도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이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 하나님의 백성은 부를 탐해서는 안 된다. 부를 탐하는 마음은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기 때문이다.
디모데전서 6장 6절부터 10절까지: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복권을 사는 것, 복권 번호를 맞히는 사행성 게임을 하는 것, 스포츠에 돈을 걸어 내기하는 것 등을 포함한 모든 형태의 도박은 부자가 되고 싶은 욕심에서 비롯된다
어떤 사람들은 복권을 사서 당첨되면 그 돈을 교회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주님께서 원하시는 일이라면, 주님께서는 당첨 번호가 적힌 복권 한 장이 그들 앞에 날아오게 하실 수도 있다.
주님께서는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이시기 위해 빵과 물고기가 가득한 가게가 필요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한 어린아이에게서 나온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충분하게 하셨다(요한복음 6장 9절).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는 교회의 사역을 위하여 현재 우리 손에 있는 것을 드리기만 하면 된다. 우리가 드린 것이 사역에 충분하도록 하시는 분은 바로 주님이시다.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여기에서 언급된 시므온에 대해서는 우리가 아는 것이 많지 않다. 성경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유대교에서 명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한 사람이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성경에서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또한 시므온은 성경에 기록된 그리스도에 관한 약속, 곧 이스라엘 백성에게 위로를 가져다줄 약속을 이해하고 믿었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기다리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바로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자신의 성령을 주셨다.
교회 시대가 시작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위격이신 성령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의 몸 안에 거하시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보내어 사용하시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성령을 부어 주셨다.
26 저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우리는 시므온이 언제 성령으로부터 말씀을 받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그가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였을 것이다. 그가 언제든지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고 생각할 때였을 것이다.
시므온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그의 시대에 태어나실 것이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시므온이 죽음을 보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고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언제든지 다시 오셔서 교회를 세상에서 데려가실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의롭고 경건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이라면, 성령께서 우리가 죽음을 겪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에 변화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실 수도 있다.
위격이신 성령께서 시므온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를 성전으로 이끄셨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마리아의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후 41일째 되는 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막절 첫날 밤, 곧 주전 7년 10월 8일 목요일 밤에 태어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신 날은 주전 7년 10월 15일 목요일이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데려간 날은 주전 7년 11월 17일 화요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전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위격이신 성령께서 시므온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그를 성전으로 이끄셨다. 그때 요셉과 마리아는 마리아의 맏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성전으로 데려오고 있었다. 그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후 41일째 되는 날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장막절 첫날 밤, 곧 주전 7년 10월 8일 목요일 밤에 태어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할례를 받으신 날은 주전 7년 10월 15일 목요일이 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 드리기 위하여 성전에 데려간 날은 기원전 7년 11월 17일 화요일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시므온은 자신의 찬양을 시작하면서 “주여”라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불렀다. 26절은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29절을 보면 시므온은 ‘주’라는 명사로 성령을 가리켜 부르고 있다. 그러나 30절부터 32절까지에서는 29절의 ‘주’라는 명사가 삼위 하나님을 통칭하여 가리키는 것으로 사용되었다.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인류의 구원은 삼위 하나님에게서 온다. 하나님으로서의 위격이신 성부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 말씀으로서의 위격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자신의 생명을 속죄 제물로 드려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다. 영으로서의 위격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구원을 깨닫고 믿어 받아들이도록 도우신다.
시므온이 주 예수님을 본 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이 인류에게 임한 것을 본 것이기도 하다. 그 구원은 삼위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 앞에 이미 마련해 두신 것이었다. 당시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여전히 하나님께 속한 백성이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시는 구원은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임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영광을 받게 하셨다.
신명기 7장 6절에:“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요한복음 4장 22절에:“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영광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하여 이방 민족들에게 비추어지는 것이다(이사야 60장 1절부터 3절까지).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말씀, 곧 “네 씨로 말미암아 땅의 모든 민족이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하신 말씀이 성취되는 것이다(창세기 22장 18절).
33 그 부모가 그 아기에 대한 말들을 기이히 여기더라
34 시므온이 저희에게 축복하고 그 모친 마리아에게 일러 가로되 보라 이 아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의 패하고 흥함을 위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 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고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을 하기 전에 요셉과 마리아는 모두 놀랍게 여겼다. 이어서 시므온은 요셉과 마리아를 축복했다. 그리고 시므온은 마리아에게 다음 세 가지를 말했다.
- 주 예수님은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의 넘어짐과 일어남을 위하여 정해지셨다. “정하다”(G2749)라는 동사는 문자적으로 어떤 것을 한 위치에 내려놓거나 고정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비유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이스라엘 가운데 많은 사람에게 넘어짐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일어남의 원인이 되기도 하도록 정하셨다. 넘어지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대교의 바리새파와 사두개파에 속한 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이었다. 일어나는 사람들은 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 받아들이는 사람들이었다.
- 주 예수님은 대적하는 말을 듣게 될 표적으로 정해지셨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대적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표징이 되도록 정하셨다. 그러한 대적은 먼저 말로 나타났다. 이러한 대적하는 말은 대환난의 마지막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 한 칼이 마리아의 혼을 꿰뚫어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칼이 혼을 꿰뚫는다”라는 표현은 감정적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는 것을 나타낸다. 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바로 마리아의 혼을 꿰뚫은 칼이었다. 또한 주 예수님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되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주 예수님을 조롱하며 “그가 남들은 구원하였으나 자신은 구원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마태복음 27장 42절; 마가복음 15장 31절). 주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 중 한 사람은 “이 사람은 잘못한 것이 없다!”라고 말했다(누가복음 23장 41절). 주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집행하던 백부장과 군인들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라고 외쳤으며, “참으로 이 사람은 의로운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마태복음 27장 54절; 마가복음 15장 39절; 누가복음 23장 47절).
주 예수님의 죽음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드러내는 원인이 되고 있다. 지난 약 이천 년 동안 수천만 명의 사람들이 주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고백하고, 그분의 속죄의 죽음을 믿는 믿음을 고백해 왔으며, 자신의 믿음과 고백을 굳게 지키기 위하여 기꺼이 목숨까지 희생했다. 그러나 수십억 명의 사람들도 주 예수님을 조롱하고 그분을 대적하는 말을 하며, 그분을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박해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고백했던 사람들 가운데 죄를 짓고 교회에서 쫓겨난 후 다시 돌아서서 교회를 박해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더라 그가 출가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 된지 팔십 사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안나( G451)라는 이름은 “은혜”라는 뜻이며, 사무엘의 어머니의 이름( H2584)과 같은 뜻이다. 우리는 말라기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마지막 선지자였으며, 그 후 하나님께서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에게 완전히 침묵하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누가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주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당시 하나님의 성전에 한 여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신다.
바누엘( G5323)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이름 브니엘( H6439)을 음역한 것으로,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안나와 바누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지 못한다. 안나는 성전에서 하나님을 경배하러 오는 여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일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여선지자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 아셀 지파는 아시리아 제국이 기원전 722년에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켰을 때 흩어진 이스라엘 왕국의 열두 지파 가운데 하나였다.
안나가 18세에 결혼하여 남편과 7년을 함께 살았고 남편이 죽은 후 84년이 지났다면, 그녀가 성전에서 주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나이는 109세였을 것이다.
“성전”(G2411)이라는 명사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키는데, 성전의 본체인 뜰과 성소와 지성소를 포함하는 성전 건물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하고, 성전 주변의 건축물들을 포함한 성전 전체 구역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도 한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라는 구절은 성전 구역을 떠나지 않았다는 뜻이다. 안나에게 성전 경내에 거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렇게 하여 그녀는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길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아마도 남편이 죽은 후 안나가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을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쩌면 그녀는 평생 나실인으로 살겠다고 서원했을 수도 있다(민수기 6장 1절부터 21절까지). 그렇다면 그녀가 주 예수님을 만났을 때까지 84년 동안 밤낮으로 성전에서 금식과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겨 온 것이 된다.
“금식하다”(G3521)라는 동사는 나실인이 먹는 음식에 대한 절제를 말할 수도 있고, 안식일에 두 끼를 금식하는 것(누가복음 18장 12절)이나 당시 바리새인들이 월요일과 목요일에 행하던 금식을 말할 수도 있다.
“간구하다”(G1162)라는 동사는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 어떤 것을 간절히 구하는 것을 말한다. 안나는 아마도 밤낮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시기를 간절히 간구했을 것이다.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니라
“그때”라는 말은 시므온이 주 예수님을 품에 안고 주 예수님에 대하여 예언하며 요셉과 마리아를 축복하고 있던 때를 가리킨다. 이 일은 아마도 성전의 여자들을 위한 뜰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제사장이 마리아를 위하여 제물을 드리는 의식을 마치고, 번제단이 있는 제사장들의 뜰에서 주 예수님을 하나님께 드린 후였을 것이다.
“그곳에 이르렀다”라는 말은 안나가 시므온이 주 예수님을 품에 안고 요셉과 마리아를 축복하고 있던 곳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안나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간구에 응답하시고 구주를 보내 주셨으며 자신이 그분을 보게 하신 것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이다. 선지자인 안나는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과 그리스도의 사역을 잘 알고 있었다. 그때부터 안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고 그분으로부터 구원을 받기를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했다.
인류를 죄의 권세와 죄의 결과에서 구원하시는 계획 가운데, 말씀으로서의 위격이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나님의 지위를 내려놓으시고 세상에 사람으로 오셔서 죽으시고, 인류를 대신하여 죄를 범한 결과를 짊어지셨다. 그분은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약 30년 동안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는 민족 가운데 국적이 없는 사람으로서의 삶을 경험하셨다. 그분은 생계를 위하여 일하셨으며, 어머니와 동생들을 돌보셨다. 또한 그분은 다른 모든 사람과 같이 시험을 받으셔야 했지만 결코 죄를 범하지 않으셨다(히브리서 4장 15절). 그분께서 죄를 범하지 않으신 것은 그분께 신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분은 사람의 위격으로 계실 때 신성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심으로 모든 시험을 이기셨다(시편 119편 11절). 때가 이르렀을 때 그분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인류를 위한 속죄 제물로 드리셨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신 인류 구원의 계획에 나타난 신비와 의로우심과 완전함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이 공부를 마친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님의 말씀에 있는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해 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평강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몸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흠이 없게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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