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요한복음 1장 6절부터 14절까지
일부 성경 해석자들은 요한복음 1장 9절부터 14절이 세례 요한의 증언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문맥을 살펴보면, 우리는 요한복음 1장 1절부터 14절까지가 전적으로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밝히고 있는 말씀임을 알 수 있다.
그 가운데 6절부터 8절까지는 사도 요한이 세례 요한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증인으로 온 사실을 언급하기 위해 기록한 부분이다. 이 세 절의 앞부분과 뒷부분, 곧 14절까지의 모든 말씀은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설명하는 내용이지, 세례 요한의 증언을 반복하여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도 요한이 세례 요한의 증언을 직접 인용하고 그의 사역을 서술하기 시작하는 것은 15절부터이다.
호칭 “침례자” (G910)는 “침례를 베푸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회개하는 사람들에게 침례를 베풀어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한 요한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앞으로의 성경 공부를 통해 세례(침례) 요한에 대하여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이다.
6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던 중 잠시 그 서술을 멈추고,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한 사람을 소개한다. 그는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신성과 사역에 대하여 증언하는 증인으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었다.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라는 표현은 세례 요한의 존재와 사역이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계획과 뜻 안에 있었음을 우리에게 깨닫게 해 준다.
요한(G2491)이라는 이름의 뜻은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분께서 너그럽게 베푸신다”이다.
“그가 왔다”라는 표현은 세례 요한이 사람으로 태어났음을 암시한다. 세례 요한이 사람으로 태어난 목적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셨을 때 그분의 신성과 사역에 대한 증인이 되기 위함이었다.
또한 “왔다”(G2064)로 번역된 동사는 “공적으로 나타나다”, “대중 앞에 등장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선포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역을 시작하신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빛”이라는 칭호를 지니셨다. 이는 그분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신 가운데서도 여전히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인류에게 전해 주셨기 때문이다. 또한 이때부터 “빛”이라는 명사가 예수님을 가리킬 때에는 고유한 칭호가 되었으므로, “빛”으로 표기된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율법이 어떤 사실을 확증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음을 알고 있다:“…두세 증인의 입으로 말마다 확정하리라” (고린도후서 13장 1절)
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신명기 19장 15절)
세례 요한은 빛에 대한 첫 번째 증인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성령의 위격으로 빛에 대한 두 번째 증인이 되셨다. 세례 요한이 자신의 증언을 선포할 때, 성령께서도 듣는 사람들의 영 안에서 자신의 증언을 선포하셨다:
증거하시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이시기 때문이라. (요한일서 5장 6절)
그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진심으로 진리를 찾는 사람은 진리를 깨닫고 진리를 믿게 된다. 하나님은 진리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 사람 자신도 빛에 대한 증인이 된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부르셨다. 이는 그들이 주님으로부터 받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에 비추고 드러내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4절)
우리는 마태복음 5장 14절 상반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구절에서 “너희”라는 대명사는 복수형으로서 그리스도의 모든 제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빛”이라는 명사는 단수형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반영하는 사람들은 많을지라도,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은 오직 하나뿐임을 암시한다. 그것이 바로 참빛이다. 따라서 마태복음 5장 14절 상반절의 의미는 “너희는 세상에 하나님의 참된 지식을 비추어 주는 반영체이다”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반영한다는 것은 그 지식을 전파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지식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지난 약 이천 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열심히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에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나님과 구원의 복음에 대하여 들어 알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듣고 알게 된 각 사람이, 또한 빛을 비추어 받은 각 사람이 그 빛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주셨으며, 각 사람은 그 자유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성부의 위격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친히 증언하셨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선포하심으로 그분을 확증하셨다(마태복음 3장 17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 지라. 마태복음 17장 5절).
사도 요한 역시 세례 요한이 빛이 아니며, 다만 빛에 대한 증인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러므로 우리는 “빛”이라는 명칭이 예수 그리스도께 사용될 때에는 그분이 빛의 근원이심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나 그 명칭이 다른 사람에게 사용될 때,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가리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을 때에는, 그들이 그리스도를 반영하고 그분께로부터 받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전파하는 자들임을 의미한다.
9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한복음 1장에서 사용된 모든 대명사 “그분”은 하나님의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 곧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의 몸을 입으신 하나님을 가리킨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항상 참빛이시다. 이는 그분께서 언제나 하나님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신실하고 참되게 나타내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우리는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일곱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선포되었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없던 것들이 있게 되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이루어졌음을 보았다.
참빛은 오직 하나님만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완전히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아시며, 하나님을 참되게 나타내실 수 있다.
성경은 사탄이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한다고 알려 준다. 이는 사탄이 하나님을 전하는 사자로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거짓 신들, 거짓 예수 그리스도들, 거짓 영들, 그리고 거짓 복음들을 전파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린도후서 11장 14절).
그러므로 사탄은 참빛을 증언하는 자가 아니라, 참빛을 가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는 자이다. 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참된 지식에서 떠나게 하고, 거짓된 가르침을 따르게 함으로써 진리에서 멀어지게 한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시는 분”이시다.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을 각 사람에게 나타내신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각 사람”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구하는 자만이 받을 것이며, 찾는 자만이 발견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 마태복음 7장 8절; 누가복음 11장 10절
그러한 계시는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친히 말씀하심으로 직접 이루어졌고, 승천하신 이후에는 사도 바울의 경우처럼 환상과 꿈을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또한 그 계시는 주님의 제자들의 전파와 삶을 통하여 간접적으로도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하나님과 복음을 전파할 때, 주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일하신다.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 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어하시니라](마가복음 16장 20절).
그러므로 사람들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심으로써, 또는 그분께서 보내신 사람들의 증언과 삶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님의 뜻에 대한 지식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말씀이신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와서 각 사람을 비추시는 참빛이시다.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0절에 사용된 “항상 계셨다”라는 동사는 과거로부터 계속되는 상태를 나타내는 시제로 사용되었다. “그분께서 세상에 항상 계셨다”라는 표현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신 이후로 계속해서 세상 가운데 계심을 의미한다.
그분께서 세상에 항상 계시는 것은 두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는 육체적 단계이고, 두 번째는 영적 단계이다. 육체적 단계는 그분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때부터 승천하실 때까지를 말한다. 영적 단계는 그분께서 승천하신 때부터 세상 끝에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한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이 확증하셨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아멘!마태복음 28장 19절과 20절
이 구절에서 “세상”(G2889)이라는 명사는 땅에 사는 사람들, 곧 세상의 주민들을 가리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땅 위의 모든 민족은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인류를 창조하셨고, 사람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분께서 오셨고 또한 그들 가운데 계속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알지 못하였다. 심지어 그분께서 친히 자신을 나타내셨을 때에도, 그분을 믿고 받아들인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였다. 실제로 사람들은 그분께서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이유로 그분을 죽였다.
이 사실은 죄로 인해 어두워진 인간의 상태를 보여 준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창조하신 분이 눈앞에 계셨음에도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오히려 그분을 거부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빛이신 그분께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나타내시며 사람들을 진리로 부르고 계신다.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그분께 속한 것들”이라는 11절의 구절은 땅 위의 모든 민족을 암시한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창조 세계를 유업으로 상속받을 거룩한 후손을 얻으시기 위함이다. 곧, 하나님의 기업인 모든 창조 사역을 상속받을 거룩한 씨를 찾으시기 위함이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 말라기 2장 15절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너희가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베드로전서 1장 3절 4절 5절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요한계시록 21장 7절
사람이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다. 죄는 사람을 하나님과 분리시키고,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지위를 잃게 하였으며, 더 이상 하나님의 유업을 상속받을 권리를 갖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사람이 되시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원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과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선포하셨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친히 인류의 구속을 이루셨으니, 곧 인간의 위격 안에 계신 하나님께서 죽음을 당하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담당하신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누구든지 그분의 대속의 죽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죄 사함을 받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며, 새롭게 창조되고, 하나님의 자녀의 지위를 부여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유업을 상속받게 된다. 하나님의 유업은 곧 하나님 아버지의 영원한 왕국이다.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에는 본래 그분께 속한 사람들이 매우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분을 믿고 영접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본래 그분께 속한 것은 그들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며 죄된 욕망을 만족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에 그분을 믿고 영접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한때 그분을 영접하였으나 나중에는 그분을 부인하기도 한다. 이는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고난받기를 원하지 않거나, 이 세상의 안락함과 부당한 쾌락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교만하며,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신의 뜻과 욕망을 더 중요하게 여기며, 결국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과 빛을 거절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근원이시며 사람들의 빛이신 그분으로부터 스스로 멀어지게 된다.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사람의 위격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이신 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자존하시며 영원히 계시는 분께서 구원자이시다”라는 의미이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그분의 뜻을 이루도록 직분과 권위와 능력을 부여하신 분’을 의미합니다.
“영접하다”(G2983)라는 동사는 손을 내밀어 받아들이고, 자기의 소유로 삼으며, 함께 지니고 사용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람의 위격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을 영접한다는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이시며 자신의 구원자이심을 받아들이는 것이요, 그분의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하는 것이며, 포도나무 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듯이 영원히 그분 곁에 있으며 그분과 연합하는 것이고, 또한 그분께로부터 오는 모든 은혜를 누리는 것을 의미한다. 그 은혜 가운데 첫째로 큰 은혜는 구원을 받는 것이며, 둘째로 큰 은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의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것이다.
“영접하다”라는 동사는 부정과거 시제로 사용되어 과거에 한 번 이루어진 행위를 가리키는 반면, “믿는”이라는 분사(명사처럼 쓰이는 동사의 형태)는 현재 시제로 사용되어 믿는 행위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그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뜻이다. 예수라는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하나님이시며,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믿는 것이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하나님에 대하여 선포하시는 선지자이시며, 자신의 생명을 하나님께 드려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 제물이 되신 대제사장이시며, 또한 자신을 믿고 영접하는 자들을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통치하시는 왕이심을 믿는 것이다.
“권세”(G1849)라는 명사는 권리와 행동할 능력을 포함하는 권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허락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까지 받는 것을 뜻한다. 주 예수께서는 자신을 영접하고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며, 또한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베푸신다. 사람은 새롭게 창조되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에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성경에서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고 말씀하는 것은, 복음을 믿고 영접한 사람들의 육체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와 같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신비롭게 태어나게 될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날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날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으며, 언제든지 이를 수 있다.
우리가 성경의 예언들을 근거로 이해할 수 있는 바에 따르면, 그날은 2027년을 넘기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자세한 내용은 https://preachingfromthebible.net/korean/67-%ec%a2%85%eb%a7%90%ea%b3%bc-2027%eb%85%84/ 에 게시된 「종말의 때와 2027년」이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정확한 날과 시는 알지 못하지만, 그분께서 오실 때가 가까운 시대는 알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시대의 표적을 분별함으로써 그분께서 오실 때를 알 수 있다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마태복음 16장 3절). 또한 그분께서는 마태복음 24장에서 자신이 오실 때의 여러 표적을 예언하셨다.
특히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다시 나라를 세울 것을 예언하셨는데, 이는 1948년 5월 14일에 이루어졌으며, 이어 예루살렘을 완전히 회복하여 다스리게 될 것도 예언하셨는데, 이는 1967년 6월 7일에 이루어졌다. 자세한 내용은 https://preachingfromthebible.net/korean/ 에 게시된 「이스라엘 무화과나무: 주께서 오시는 표적 https://preachingfromthebible.net/korean/060-%ec%9d%b4%ec%8a%a4%eb%9d%bc%ec%97%98-%eb%ac%b4%ed%99%94%ea%b3%bc%eb%82%98%eb%ac%b4-%ec%a3%bc%eb%8b%98%ea%bb%98%ec%84%9c-%ec%98%a4%ec%8b%a4-%ec%a7%95%ec%a1%b0/ 」이라는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성경이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씀할 때에는, 사람이 삼위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고 또한 삼위 하나님에 의해 거듭났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자녀들”(G5043)이라는 명사는 요한복음 1장 12절에서 남자와 여자 모두를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치시는 바와 같다.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린도후서 6장 18절)
“아들”(G5207)이라는 명사는 요한계시록 21장 7절에서 문자적으로는 아들을 뜻하지만, 비유적으로는 기업을 상속받을 권리를 가진 자녀를 의미한다. 이스라엘의 관습에서는 아들만이 아버지의 기업을 상속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성경이 이 명사를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호칭으로 사용할 때에는, 남녀를 구별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업을 상속받는 지위를 강조하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우리는 이를 “자녀”로 번역하였다.
또한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문법에서는 남성 복수 명사를 사용하여 남자로만 이루어진 집단뿐 아니라, 남녀가 함께 포함된 집단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그 사람들”이란 사람의 위격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자신의 인격인 혼이 거듭났으며(고린도후서 5장 17절), 성령에 의해 자신의 영적인 몸인 영이 거듭났고(요한복음 3장 6절),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현재의 육체가 거룩하게 되었다(데살로니가후서 2장 13절; 유다서 1절).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 위해 오시는 날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들의 육체를 새롭게 하실 것이다. 이미 죽은 자들의 육체는 흙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게 하시고, 살아 있는 자들의 육체는 변화시켜,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육체와 같은 새롭고 영광스러우며 썩지 아니하는 육체가 되게 하실 것이다.
그 사람들이 태어난 것은 다음과 같다.
- “혈통으로 난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은 사람의 여러 민족에 속한 육적인 혈통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뜻한다. 곧 어느 민족에 속하든지 아버지와 어머니의 육체적인 결합으로 태어난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혈통”은 복수형으로 사용되어 여러 민족의 혈통을 가리킨다.
- “육정으로 난 것이 아니요”라는 말씀은 사람의 육체에 속한 의지, 곧 육적인 뜻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님을 의미한다.
- “사람의 뜻으로 난 것도 아니요”라는 말씀은 사람의 영적 의지에 포함된 어떤 뜻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님을 의미한다.
-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라는 말씀은 오직 삼위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에 의해서만 사람이 거듭나고 새롭게 창조된다는 뜻이다. 곧 사람이 사람의 위격을 입고 오신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진심으로 죄를 회개할 때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거듭나고 새롭게 창조되는 것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은 전적으로 삼위 하나님의 뜻과 역사하심에 달려 있다.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육신이 되신 것은 하나의 신비이며, 그분께서는 사도 요한을 통하여 이 사실을 친히 사람들에게 확증하셨다.
여기에서 말하는 “육신”이란 사람의 물질적인 몸을 가리킨다. 곧 하나님께서 기꺼이 사람이 되셔서,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같이 완전한 한 사람이 되셨음을 의미한다.
“되셨다”(G1096)라는 동사는 부정과거 시제, 중간태, 직설법으로 사용되었다.
- 부정과거 시제는 이미 일어난 한 사건을 가리킨다.
- 헬라어의 중간태는 주어가 스스로 행위를 하며, 그 행위의 결과가 다시 주어 자신에게 미치는 것을 나타내는 동사의 형태이다.
- 직설법은 실제로 일어난 사실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말씀께서 육신이 되셨다”라는 말씀은,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육신이 되는 일을 행하셨으며,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난 역사적 사실임을 의미한다. 빌립보서 2장 7절은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육신이 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확증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자신을 위하여 사람의 육체를 이루는 하나의 세포를 창조하셨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어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 세포를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 있는 난자와 결합하게 하여 태아를 이루게 하셨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그 태아가 자라도록 능력을 베푸셨다. 마침내 마리아는 그분의 육체를 낳았으며, 그 사람은 예수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의 사람의 육체를 이루는 세포가 하나님에 의해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 있는 난자와 결합하여 예수라는 사람의 태아를 이루게 된 날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 예수의 육체를 낳으신 날이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시편에서 친히 예언하신 바와 같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 2장 7절; 히브리서 1장 5절 참조)
마리아가 예수라는 사람을 낳은 날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자신의 아들을 처녀 마리아의 태로부터 세상에 보내신 날이다(요한복음 3장 17절).
하나님 아버지께서 말씀 되시는 분을 낳으셨으며, 그 말씀 되시는 분을 하늘에서 세상으로 보내셨다는 일은 결코 없다. 진리는 이러하다.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육신이 되셨고, 하나님 아버지에 의해 처녀 마리아의 태에서 사람으로 태어나셨으며, 처녀 마리아를 통하여 세상에 나셨다. 주 예수께서 세상에 태어나신 것이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분을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를 세상에 보내셨다고 말한다.
말씀 되시는 분의 사람의 위격만이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리며 사람으로 태어나셨다. 그러나 그분의 하나님의 위격은 영원부터 존재하시며, 하나님 아버지과 성령과 동등하시다.
그분께서는 하나님이시지만 친히 육신이 되셔서 한 여인, 곧 마리아에게서 태어나기를 기꺼이 받아들이셨다. 그러므로 마리아는 사람 예수의 육체의 어머니이다. 그러나 가톨릭 교리가 가르치는 것처럼 마리아가 하나님의 어머니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피조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록 사람 예수께서는 곧 하나님 자신이셨지만,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사람으로 태어나시고, 자라나시며, 사람으로서 살아가셔야 했다. 또한 하나님의 모든 권세와 능력을 스스로 비워 종의 모습으로 사셨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분명히 말씀한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람의 모양이란 사람의 존재와 본성을 모두 포함하는 것으로, 육체와 외모, 감각과 감정, 생각과 태도, 행위와 삶의 방식 등을 포함한다.]” (빌립보서 2장 6절부터 8절까지)
영원 전부터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본체로 존재하셨으니, 이는 그분께서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때가 이르자 그분께서는 하나님의 속성과 특권을 스스로 내려놓으시고 사람이 되셨으며, 모든 면에서 완전한 한 사람이 되셨다.
그러나 그분께서 인류를 위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사람의 육체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에야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특권을 다시 가지셨다. 그때부터 그분의 사람의 육체는 여전히 사람의 육체이지만,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특권으로 역사하게 되었다. 이는 그분의 하나님의 위격과 사람의 위격이 신비롭게 하나가 되어 영원토록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라는 말씀은, 그분께서 이 땅에서의 덧없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사람들 가운데 함께 거하셨음을 의미한다. 성경은 사람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나그네와 임시 거주자의 삶과 같이 잠시뿐인 것임을 가르친다.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 히브리서 11장 13절
이스라엘 백성은 장막에서 생활하는 유목 생활에 매우 익숙하였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또한 그들에게 초막절을 제정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 광야에서 사십 년 동안 장막에 거하며 떠돌았던 일을 기억하게 하셨다. 동시에 죄가 세상에 들어온 이후 이 땅에서의 사람의 삶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잠시 머무는 삶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셨다.
말씀께서 우리 가운데 장막을 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세상에 오셔서 사람들과 함께 삶의 기쁨과 슬픔을 나누셨음을 의미한다. 그분께서는 사람의 모든 감정과 처지를 함께 경험하셨으며, 시험의 압박을 겪는 일과 죄의 형벌을 담당하는 일까지도 친히 체험하셨다.
그분께서는 자신의 육체가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육체적인 죽음을 경험하셨다. 또한 인류를 대신하여 죄의 형벌을 담당하셨을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분리되는 영적인 죽음을 경험하셨다. 그때 그분께서는 크게 부르짖으셨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마태복음 27장 46절; 마가복음 15장 34절)
사람의 위격을 입으신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분이시다. 은혜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선한 은사를 포함한다. 진리는 하나님 자신이시며, 또한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다.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선한 은혜를 받는다. 또한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모든 뜻을 깨닫게 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가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는 우리와 같은 한 사람이 되셔서, 우리 사람들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 가운데 어느 누구와도 같이 살아가셨다. 그러나 이 구절의 문맥에 따르면, 여기에서 사용된 “우리”라는 대명사는 특별히 사도 요한 자신과 그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하나님의 백성을 가리키는 의미도 포함하고 있다. 이어지는 말씀에서 사도 요한은 자신들과 다른 제자들이 친히 그분의 영광을 보았던 경험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과 다른 제자들이 바라본 그 영광은 변화산에서 빛으로 나타난 영광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 속에서 나타난 사랑과 거룩함과 의로움이 그분의 모든 몸짓과 말씀과 행실을 통하여 드러난 영광이기도 하다.
“아버지에게서 오신 독생자의 영광과 같은 영광”이라는 말씀은, 변화산에서 찬란한 빛으로 나타난 영광이든, 그분의 성품을 통하여 나타난 영광이든, 모두 완전하고 절대적인 영광임을 의미한다. 그러한 영광은 오직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에게만 있을 수 있는 영광이다.
여기에서 “독생자”라는 명칭이 사용된 것은, 당시에는 주 예수께서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태어나신 유일한 사람이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을 하나님 아버지께로부터 거듭나게 되자, 주 예수께서는 맏아들이 되셨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로마서 8장 29절)
이는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천사들이 사람들에게 나타났던 것처럼 사람의 모습만 취하여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어떤 사람의 육체 안에 들어가 거하신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는 친히 참으로 육신이 되셔서, 잉태되시고, 태어나시며, 자라나시고, 사람의 육체와 사람의 위격 안에서 사셨다. 그분은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칭호를 가지시고, 모든 피조물의 주가 되셨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완전한 사람이시다. 말씀 되시는 분의 하나님의 위격은 그분의 사람의 위격과 완전히 하나로 연합되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가 되실 수 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디모데전서 2장 5절)
“중보자”란 둘 또는 그 이상의 당사자 사이에 서서 그들이 서로 언약을 맺도록 보증하고 책임지는 사람을 의미한다.
“보증한다”는 것은 각 당사자가 제시하는 내용과 약속이 모두 참되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다.
“책임진다”는 것은 언약을 맺은 어느 한쪽이 그 언약에 따른 의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그 책임을 대신 맡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중보자는 하나님을 온전히 알아야 하며,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과 뜻을 분명히 알아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타내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중보자는 반드시 하나님이셔야 한다.
사람의 중보자는 반드시 완전한 사람이어야 하며, 죄가 없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을 수 있는 자격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동시에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셔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는 오직 한 분의 중보자만 계시므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모든 교통과 언약은 반드시 그 중보자를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그 중보자를 통하여 자신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시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 또한 사람은 오직 그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한량없고 무한한 사랑과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 되시는 분께서 친히 육신이 되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가 되셨음을 감사드린다.
하늘에 계신 우리의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 우리를 아들과 딸로 받아 주시고, 영원한 기업을 우리에게 주셨음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드립니다. 주께서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게 하시고, 신비롭게 주님의 몸의 지체가 되게 하셔서 영원토록 주님과 연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성령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풍성히 베풀어 주셔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기쁨으로 살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요한복음 16장 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합니다(요한복음 17장 17절). 평강의 하나님, 곧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게 지켜 주시기를 원합니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우리의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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