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L005 그리스도의 족보 – 제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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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7절까지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누가복음 3장 23절에서 31절까지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5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26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27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29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30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35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36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37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족보(家譜)”란 한 가문의 혈통과 그에 관한 일들을 기록한 책을 뜻한다. “가(家)”는 가정이나 가문을 의미하며, “보(譜)”는 사람과 사건을 체계적으로 기록한 책을 의미한다. 이러한 의미는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로 시작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며 다윗 왕의 자손이심을 증명하고, 또한 구약성경에 약속된 그리스도, 곧 메시아이심을 밝히기 위함이다. 메시아(히브리어) 또는 그리스도(헬라어)란 하나님께 기름 부음을 받은 분, 곧 하나님께로부터 선지자와 대제사장과 이스라엘 및 모든 민족의 왕으로서의 직분과 권세와 능력을 받으신 분을 뜻한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족보를 제3장 끝부분에 기록하고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생애의 시작을 서술한 후에 족보를 제시함으로써, 그분께서 참으로 사람이시며, 인류의 혈통에 속하신 분이시고, 또한 온전한 사람이심을 증명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두 족보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는 반면, 서로 다른 점도 매우 많다. 이러한 차이가 생긴 주된 이유는 마태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양부인 요셉의 계보를 따라 족보를 기록하였으며, 그 계보를 아브라함까지만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어머니 마리아의 계보를 따라 족보를 기록하였고, 그 계보를 아담의 창조에 이르기까지 모두 기록하였다. 요셉과 마리아는 모두 다윗 왕의 자손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솔로몬의 계통에 속한 자손이었고, 마리아는 나단의 계통에 속한 자손이었다.

마가복음과 요한복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 이유는 마가복음이 예수 그리스도를 종으로 나타내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종에 대해서는 그의 족보를 제시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에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으로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자존하시며 영원부터 영원까지 계시는 분이시므로 족보가 없으시다.

마태복음은 인류의 왕이시며 구주이신 분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족보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누가복음은 인류의 구주가 되시기에 합당하신 온전한 한 사람을 제시하고 있으므로 역시 족보가 반드시 필요하였다. 마태와 누가는 모두 구약성경에 기록된 족보뿐만 아니라, 산헤드린 공회에 등록되어 보관된 다윗 왕의 후손들의 족보도 참고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우리는 누가복음의 족보 가운데 바벨론 포로 생활 이후부터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의 대부분의 명단은 누가가 마리아 가문의 족보를 참고하여 기록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 두 족보가 공개된 이후 지금까지 거의 이천 년이 지났지만, 두 족보의 여러 세부 사항에 대한 의문과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도 오랜 시간을 들여 수많은 해설과 논쟁을 검토하였으나, 대부분의 자료에 만족할 수 없었다.

이 글에서는 성경의 기록과 성령께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바를 바탕으로 우리의 견해와 생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독자들은 우리가 제시하는 내용을 반드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각자는 우리가 제시하는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해 보고, 또한 하나님께서 그것이 과연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 깨닫게 해 주시기를 구하기 바란다.

우리의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 자체를 근거로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도록 돕는 데 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깊이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 안에서 기뻐하며 살아가게 되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성경의 어떤 부분을 아직 분명하게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는 사실을 굳게 믿는 것이다. 만일 사본의 필사 과정이나 번역 과정에서 오류나 착오가 있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데 시간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어 그것을 우리에게 밝혀 주실 것이다.

물론 교회 역사의 자료들과 초대교회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남긴 문헌들, 그리고 일반 역사 자료들을 함께 살펴본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될 당시의 사회적 배경을 더욱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많은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자료들의 대부분은 오늘날 널리 사용되는 언어인 영어로 번역되어 있다.

아래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요약하여 정리한 표이다.

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마태복음 1:1-17에 따른 족보 순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 – 누가복음 3:23-38에 따른 족보
1 아브라함 1 하나님
2 이삭 2 아담
3 야곱 3
4 유다 4 에노스
5 베레스 (다말에게서) 5 가이난
6 헤스론 6 마할랄렐
7 7 야렛
8 아미나답 8 에녹
9 나손 9 므두셀라
10 살몬 10 레멕
11 보아스 (라합에게서) 11 노아
12 오벳 (룻에게서) 12
13 이새 13 아박삿
14 다윗 왕 14 가이난? 14.사이라
15 솔로몬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15 헤버
16 르호보암 16 벨렉
17 아비야 17 르우
18 아사 18 스룩
19 여호사밧 19 나홀
20 요람 20 데라
21 웃시야 21 아브라함
22 요담 22 이삭
23 아하스 23 야곱
24 히스기야 24 유다
25 므낫세 25 베레스
26 아몬 26 헤스론
27 요시야 27
28 여호야김? 28 아미나답
29 여고냐 29 나손
30 스알디엘 30 살몬
31 스룹바벨 31 보아스
32 아비훗 32 오벳
33 엘리아김 33 이새
34 아소르 34 다윗
35 사독 35 나단
36 아킴 36 맛다다
37 엘리웃 37 멘나
38 엘르아살 38 멜레아
39 맛단 39 엘리아김
40 야곱 40 요남
41 요셉 41 요셉
42 **42 예수** 42 유다
43 43 시므온
44 44 레위
45 45 맛닷
46 46 요림
47 47 엘리에셀
48 48 요세
49 49 에르
50 50 엘마담
51 51 고삼
52 52 앗디
53 53 멜기
54 54 네리
55 55 스알디엘
56 56 스룹바벨
57 57 레사
58 58 요난
59 59 요다
60 60 요섹
61 61 서머인
62 62 맛다디아
63 63 마앗
64 64 낙개
65 65 에슬리
66 66 나훔
67 67 아모스
68 68 맛다디아
69 69 요셉
70 70 얀나
71 71 멜기
72 72 레위
73 73 맛닷
74 74 헬리
75 75 요셉
76 76 마리아
77 77 **77 예수**

빨간색 글자는 두 족보에 공통으로 나타나는 이름들을 표시한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는 요람과 웃시야 사이에 파란색의 대괄호 안에 줄임표(…)가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하나의 의문점을 나타낸다. 곧 마태는 아하시야와 요아스와 아마샤, 이렇게 세 왕의 이름을 연속하여 생략하였다(역대상 3장 11절과 12절). 그 이유는 이 세 왕이 모두 요람 왕의 아내인 아달랴 왕후의 후손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아달랴는 매우 악한 왕후였다. 그녀는 또한 매우 악하였던 아합 왕과 이세벨 왕후의 딸이었다. 요람 왕과 아달랴 사이에서 태어난 아하시야 왕이 죽자, 아달랴는 자신이 유다 왕국의 여왕이 되어 다스리기 위해 왕자들을 모두 죽이도록 하였다. 그러나 아하시야의 누이인 여호세바가 아하시야의 갓난아들 요아스(여호아스라고도 불림)를 숨겨 주었다.

아달랴가 유다를 다스린 지 7년이 되었고, 요아스도 일곱 살이 되었을 때, 대제사장 여호야다가 군대의 지휘관들과 함께 힘을 모아 아달랴를 죽이고 요아스를 왕으로 세웠다(열왕기하 11장).

이처럼 아달랴에게서 이어진 세 왕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다. 아달랴의 4대 후손인 웃시야 왕에 이르러서야 다시 족보에 이름이 기록되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여호야김이라는 이름은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이는 하나의 의문점을 나타낸다.

마태복음 1장 11절은 모든 헬라어 사본에서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마태복음 1장 11절

그러나 필사 과정에서 여호야김의 이름이 여고냐의 이름으로 잘못 옮겨졌을 가능성이 있다. 여고냐, 곧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이었다(열왕기하 24장 6절).

실제로 요시야는 여호야김과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역대상 3장 15절에 따르면, 요시야의 맏아들은 요하난이고, 둘째는 여호야김이며, 셋째는 시드기야이고, 넷째는 살룸이다. 반면에 여호야김은 여고냐와 시드기야를 낳았다.

그러므로 요시야가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여호야김의 동생과 아들이 모두 시드기야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여호야김의 동생의 본래 이름은 맛다니야였으나, 바벨론 왕이 여호야긴, 곧 여고냐를 대신하여 그를 왕으로 세우면서 그의 이름을 시드기야로 바꾸었다(열왕기하 24장 17절).

한편, 히브리어로 된 마태복음의 일부 사본에서는 마태복음 1장 11절에 여고냐 대신 여호야김이라는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구약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

우리는 헬라어 사본들에 필사상의 오류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그 결과 14+14+14=42명의 계보에서 한 이름이 빠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여호야김의 이름이 없다면 전체 이름의 수는 41명에 불과하게 되어, 마태복음 1장 17절의 진술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

누가복음의 족보에서는 게난이라는 이름이 파란색으로 표시되어 있으며 물음표(?)가 붙어 있다. 이는 하나의 의문점을 나타낸다.

누가복음의 모든 헬라어 사본은 누가복음 3장 36절에서 셀라와 아르박삿 사이에 게난이라는 이름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구약성경의 히브리어 사본들에는 셀라가 게난의 아들이고, 게난이 아르박삿의 아들이라는 기록이 전혀 없다. 오히려 히브리어 구약성경 사본들은 모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아르박삿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창세기 10장 24절)

그러나 구약성경 칠십인역(Septuagint)에서는 창세기 10장 24절에 게난이라는 이름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아르박삿은 게난을 낳고, 게난은 셀라를 낳고, 셀라는 에벨을 낳았다.” (창세기 10장 24절, 칠십인역)

구약성경 칠십인역은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 기원전 3세기 중엽경에 번역되었다. 이 칠십인역은 예수 그리스도와 초대교회가 사용한 구약성경 번역본이었다.

우리는 누가가 누가복음 3장 36절에 게난이라는 이름을 원래 기록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초대교회 시대에 누가복음이 필사되는 과정에서, 필사자들이 누가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칠십인역에 기록된 셈의 족보와 대조해 보고, 누가가 게난의 이름을 빠뜨렸다고 생각하여 그 이름을 임의로 덧붙였을 가능성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원본, 곧 최초의 기록은 어떠한 오류나 잘못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필사본과 번역본에는 필사와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 원본에는 오류가 없지만, 칠십인역에는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오류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창세기 10장 24절에 게난이라는 이름이 잘못 추가되었을 가능성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서 나온 인류의 계통을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것처럼 모두 70민족으로 정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10장 24절에는 게난이라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게난의 이름이 포함된다면 민족의 수는 71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70이라는 수는 모든 능력이 함께 나타나는 온전한 영적 질서를 상징한다. 이 수는 각각 완전함을 상징하는 두 수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 7은 영적인 완전함, 곧 거룩한 것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숫자 10은 수량과 질서와 율법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 십진법의 수 체계, 그리고 하나님의 십계명은 이러한 완전함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의 원본, 곧 최초의 기록은 어떠한 오류나 잘못도 없는 완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필사본과 번역본에는 필사와 번역 과정에서 생긴 오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므로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성경 원본에는 오류가 없지만, 칠십인역에는 오류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그 오류 가운데 하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창세기 10장 24절에 게난이라는 이름이 잘못 추가되었을 가능성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서 나온 인류의 계통을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것처럼 모두 70민족으로 정하셨다고 믿는다. 그러므로 창세기 10장 24절에는 게난이라는 이름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만일 게난의 이름이 포함된다면 민족의 수는 71이 되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70이라는 수는 모든 능력이 함께 나타나는 온전한 영적 질서를 상징한다. 이 수는 각각 완전함을 상징하는 두 수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숫자 7은 영적인 완전함, 곧 거룩한 것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숫자 10은 수량과 질서와 율법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예를 들어 사람의 열 손가락과 열 발가락, 십진법의 수 체계, 그리고 하나님의 십계명은 이러한 완전함을 나타낸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왜곡하지 않는 범위에서, 필사본과 번역본에 일부 중대한 것이 아닌 오류나 실수가 존재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셨다고 믿는다. 이는 성경 원본의 절대적인 권위와 완전성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성경을 필사하고 번역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일을 감당할 은혜를 받았지만, 성경의 원저자들처럼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최초의 성경 원본을 기록할 때에만 한 번 완전한 영감을 주셨으며, 그 영감은 그 원본들에 충분하게 주어졌다고 우리는 믿는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의 원본, 곧 최초에 기록된 성경 문서들을 더 이상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원본에서 필사된 여러 사본들을 서로 대조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성경 연구 전문가들은 어떤 사본이 원본의 내용과 일치하는지를 여전히 밝혀 낼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성경의 원본 사본들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도록 허락하지 않으신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람들이 그것들을 우상화하거나 숭배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원본들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어떤 곳에 여전히 보존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천년왕국이 세워질 때 하나님께서 그 원본들을 나타내도록 허락하신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매우 큰 복이 될 것이다.

마태복음의 족보와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모두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이라는 이름이 연이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마태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은 누가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스알디엘과 스룹바벨과 서로 다른 인물이다. 한 계보는 솔로몬의 계통을 따른 다윗의 후손이고, 다른 계보는 나단의 계통을 따른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솔로몬과 나단 이후부터는 누가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과 마태복음의 족보에 나오는 인물들이 이름이 같다고 해서 동일한 인물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완전히 서로 다른 두 계통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예수께서 친히 서른 살쯤 되어 사역을 시작하실 때에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요셉의 아들이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두 족보에 기록된 요셉이라는 이름은 모두 동일한 한 사람, 곧 마리아의 남편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법적인 아버지를 가리킨다. 우리는 마태복음의 족보가 분명히 요셉의 계통을 따라 기록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이며, 그의 계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솔로몬을 거쳐 다윗에게 이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친아들은 아니셨지만 법적으로 요셉의 아들이셨으므로 다윗의 왕위를 계승할 법적인 권리를 가지셨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에게 영원히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왕위였다.

사무엘하 7장 16절: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마태복음의 족보는 법적인 측면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솔로몬의 계통을 통한 다윗 왕의 자손이시며, 다윗의 왕좌에 앉을 권리를 가지신 분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여고냐 왕, 곧 여호야긴 왕의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여고냐의 자손 가운데 어느 누구도 다시는 다윗의 왕좌에 앉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예레미야 22장 30절).

그렇다면 만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친아들이셨다면, 그 저주로 말미암아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수 없게 된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친아들이 아니셨으므로 그 저주는 예수 그리스도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친아들이 아니시라면, 또한 다윗의 혈통에 속하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다윗의 혈통에 속하셔야 하며, 그래야만 메시아에 관한 예언이 성취될 수 있다.

이사야 11장 1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사야 11장 10절: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호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

바로 이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누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그분의 친어머니인 마리아의 계통을 따라 기록하게 하셨다. 이는 육신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다윗 왕의 혈통에 속하시며, 나단의 계통을 따른 다윗의 후손이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에 속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분에게 친아버지가 없으셨으므로 여자의 후손에 속하신다는 사실도 증명한다. 이로써 하나님께서 창세기에서 말씀하신 예언이 성취되었다.

창세기 3장 15절: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요셉은 마리아의 계보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법적인 아버지였으므로 그분의 족보에 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 누가는 이를 분명히 밝히기 위하여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요셉의 아들이었다”라고 주의 깊게 기록하였다. 따라서 족보의 명단에는 마리아의 이름이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리아의 이름이 함축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부 성경 해석가들은 두 족보가 모두 요셉의 족보라고 주장한다. 그들의 견해에 따르면, 요셉은 마태복음에 분명하게 기록된 것처럼 야곱의 친아들이었다. 그러나 요셉은 다음 두 가지 이유 가운데 하나로 헬리의 법적인 아들이 되었다고 본다.

  • 요셉은 헬리의 사위였으며, 헬리에게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헬리가 요셉을 상속자로 삼아 아들로 받아들였다는 견해이다.
  • 요셉은 헬리의 법적인 아들이었으며, 헬리의 이복형제인 야곱에게서 태어났다는 견해이다. 그 이유는 헬리가 아들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야곱이 구약의 율법에 따라 헬리의 아내를 맞아들여 헬리의 대를 이을 자손을 낳아 주었다는 것이다.

신명기 25장 5절과 6절: 형제가 동거하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 그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취하여 아내를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그 여인의 낳은 첫 아들로 그 죽은 형제의 후사를 잇게 하여 그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요셉은 야곱의 친아들이면서 동시에 헬리의 법적인 아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이유는 모두 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한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혈통을 가지셨다는 사실을 증명할 수 없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요셉의 친아들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쪽을 따른 족보이어야 한다. 족보의 명단에는 마리아의 이름이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마리아의 이름이 함축되어 있으며, 그 결과 전체 명단은 모두 77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

맨 앞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의미한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마리아의 이름이 함축되어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아들이심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가리켜 자주 “인자”라고 부르셨으며, 이를 간략하게 번역하면 (사람의 아들)이다.

마태복음의 족보에서 동사 “낳다”(G1080)는 남자를 주어로 사용할 때 “태어나게 하다”라는 뜻을 가진다. 넓은 의미에서는 “조상이 되다”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아브라함이 이삭을 태어나게 하였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레위를 낳았다”라고 말한다면, 이를 넓은 의미로 “아브라함이 레위의 조상이 되었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 실제로 레위는 아브라함의 증손자이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7장 10절은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어에서 사용되는 “낳다”라는 동사의 넓은 의미를 우리가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멜기세덱이 그를 만났을 때에 레위는 아직 그의 조상의 허리에 있었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사람은 아담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을 때부터 이미 아담 안에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하와 역시 하나님의 기적에 의해 아담에게서 나왔다.

그러므로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아담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 기록하고, 아담이 하나님께 속하였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어떤 남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한 사람은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다윗 왕의 계통을 따라 처녀 마리아의 태중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이다.

동사 “낳다”(G1080)가 여자를 주어로 사용할 때에는 직접 임신하여 자녀를 낳는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그 여자에게서 예수께서 나셨으니 그분을 그리스도라 한다”라는 말씀에서 그렇게 사용되었다.

누가복음의 족보에서는 누가가 간결한 표현 방식을 사용하여, 이 사람이 저 사람에게 속한다고 기록하였다. 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들이거나 손자임을 암시한다. 예를 들어 “헬리에게 속한”이라는 말은 헬리의 아들이거나 손자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누가가 사용한 이러한 “속한”이라는 표현은 또한 인간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법적인 아버지인 요셉을 제외하고, 족보에 기록된 모든 사람의 혈통에 속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누가복음 3장 23절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요셉의 아들이었다”라는 구절은 다음과 같이 괄호 안에 넣어 읽어야 한다.

누가복음 3장 23절: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이는 관습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아들이셨지만, 실제로는 헬리에게 속하신 분, 곧 헬리의 후손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누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한 의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누가는 다음과 같은 뜻을 나타내고자 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 관습적으로는 요셉의 아들이시지만, 혈통상 요셉의 아들은 아니시며,
  • 혈통상 헬리의 후손이시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의 친아들이시고, 마리아가 헬리의 친딸이기 때문이다.
  • 혈통상 맛닷의 후손이시다. 이는 헬리가 맛닷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 혈통상 레위의 후손이시다. 이는 맛닷이 레위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 ···
  • 혈통상 아담의 후손이시다. 이는 셋이 아담의 친아들이기 때문이다.
  • 창조된 아들이라는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이는 아담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아담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였다. 이는 아담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지위로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암시한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맨 처음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모두 42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으며, 세 그룹으로 나뉘어 있고 각 그룹은 각각 14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져 있다.

일부 성경 해석가들은 마태가 족보를 쉽게 기억할 수 있도록 의도적으로 그렇게 배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가 역사적 자료와 성령의 감동에 따라 충실하게 기록하였다고 생각한다. 성령께서는 족보에 포함되기에 합당하지 않은 세 왕의 이름을 제외하도록 마태에게 감동하셨다.

마태는 명단을 작성한 후에야 주님의 족보가 각각 14개의 이름으로 이루어진 세 부분으로 고르게 나뉘어 있음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그 사실에 대한 자신의 관찰을 17절에 기록한 것으로 생각한다.

또 다른 일부 성경 해석가들은 히브리어의 각 글자에 숫자값이 대응한다고 주장한다. 다윗이라는 이름을 이루는 히브리어 글자들의 숫자값을 합하면 14가 되므로, 마태가 각 역사적 시대마다 14대가 되도록 족보를 배열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14대가 되는 것과 여고냐부터 예수 그리스도까지 14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그렇게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마태가 의도적으로 배열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다.

오직 솔로몬부터 여호야김까지의 계보에서만 세 대를 제외해야 14대가 남는다.

성경에서 숫자 7은 영적인 완전함을 상징한다. 숫자 14는 숫자 7의 두 배이므로, 이는 사람이 타락하여 죄를 범한 후 구속받음으로써 영적인 완전함이 두 배로 더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창조는 완전하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창조물을 회복하시는 일도 완전하다. 그러므로 숫자 14는 구원을 상징한다.

성경력, 곧 유대력으로 1월 14일은 유월절이다. 이 절기는 그리스도께서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을 상징한다.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낳다”(G1080)라는 동사가 모두 40번 나온다. 그중 39번은 능동태로 사용되어 “~의 조상이 되다”라는 의미를 나타내며, 한 번은 수동태로 사용되어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사건을 나타낸다.

마태복음의 족보가 아브라함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다윗 왕을 강조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곧 구약성경에서 약속된 메시아이시며, 하나님의 약속이 주어진 계통, 곧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심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누가복음의 족보에는 하나님과 마리아를 포함하여 모두 77개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마리아의 이름은 23절의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요셉의 아들이었다”라는 표현을 통해 함축되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혈통상 요셉의 아들이 아니셨다는 사실을 확증하기 위한 것이므로, 족보의 명단에는 마리아의 이름이 함축되어 있다고 이해해야 한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습에 따르면 족보에는 여자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다만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마태가 특별히 기록한 몇 가지 주석이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볼 것이다.

누가복음의 족보에서는 33절의 요셉을 제외하고 모든 이름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다. 이는 요셉이 족보에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나단의 계통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음을 암시한다.

숫자 7은 영적인 것, 곧 거룩한 것과 관련된 모든 면에서의 영적인 완전함을 상징한다. 숫자 10은 수량과 율법에 있어서의 완전함을 상징한다.

숫자 77은 7×10+7의 합으로 이루어진 수이다. 이는 영적인 완전함이 10배로 더해진 후, 다시 한 번 완전함이 더해지는 것을 의미하며, 하나님의 율법과 뜻에 근거한 절대적인 완전함을 나타낸다.

누가복음의 족보가 아담과 하나님까지 포함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인류의 혈통에 속하시며 완전한 인간이 되셨음을 증명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친히 자신을 “인자의 아들”이라고 부르셨다.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해 시간을 내어 묵상하고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베푸신 구원 계획의 각 세부 사항에 담긴 영적인 의미와 정확성을 깨닫게 된다. 이 구원 계획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가운데 창세 전부터 미리 정하신 계획이다.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사람, 곧 하나님의 참된 백성도 그리스도의 족보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새 이름을 주시고 그 새 이름을 흰 돌에 기록해 주시는 날에, 우리 각 사람의 이름도 그리스도의 이름 다음에 이어서 기록될 것이다(요한계시록 2장 17절).

다음 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한 두 성경 본문에 나오는 각 구절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다.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6장 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7장 17절). 평강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흠 없이 보존되도록 지켜 주시기를 바란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되기를 바란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