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10 . 세례 요한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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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장 57절부터 80절까지: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59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이 과에서 우리는 세례 요한의 탄생과 그의 이름이 지어진 일에 대하여 배운다. 또한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하여 예언하고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한 것에 대하여 배운다.

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저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마리아가 나사렛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사벳은 해산할 때가 되었다. 엘리사벳은 남편 사가랴에게 천사가 말해 준 대로 아들을 낳았다.

엘리사벳이 언제부터 이웃들과 가족들에게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 알렸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아들을 낳은 날에는 그 사실을 모두가 알고 함께 기뻐하였다. 엘리사벳이 임신하여 아들을 낳은 일은 주님께서 그녀에게 베풀어 주신 큰 긍휼로 여겨졌다. 그것은 그녀와 남편이 오랫동안 바라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여자가 일반적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나이를 이미 지나도록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우리에게는 정당한 소망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러한 소망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본성 안에 두신 소망들이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평안하고 화목한 삶을 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자신의 적성에 맞는 직업을 갖고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넉넉히 채울 수 있는 수입을 얻고 싶은 소망이 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해 주는 남편이나 아내를 만나고, 지혜롭고 아름다우며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녀를 얻고 싶은 소망도 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정당한 소망이 반드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시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와 동시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긍휼에 달려 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정당한 소망 가운데 어떤 것들을 허락하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이 오히려 우리에게 더 유익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가르친다. 로마서 8장 28절과 29절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장차 올 세상, 곧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에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긴다면, 이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모든 일은 그분께서 자신의 왕국에서 우리를 위하여 미리 정하신 목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59 팔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부친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 그 모친이 대답하여 가로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하나님의 율법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태어난 남자아이는 태어난 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이를 포피를 베어 내는 것이라고도 한다(창세기 17장 12절; 레위기 12장 3절). 창세기 17장 9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에 따르면,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과 맺으신 언약의 표징이었다. 이 언약에는 다른 민족에게서 사 온 종들도 포함되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의 후손 가운데 태어난 모든 남자아이와 남자 종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태어난 지 여덟째 날에 할례를 받아야 했다. 육체에 행하는 할례는 마음속에 있는 죄를 짓고자 하는 욕망을 잘라 내는 것을 상징한다(신명기 10장 16절; 골로새서 2장 11절).

아마도 엘리사벳의 이웃들과 친족들은 이 아이가 부부에게 유일한 아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아이의 이름을 그의 아버지인 사가랴의 이름을 따라 짓자고 의견을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엘리사벳은 그 제안을 즉시 거절하고,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엘리사벳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지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사가랴가 글로 써서 엘리사벳에게 천사가 성전에서 자신에게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소식을 전하였으며, 그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어야 한다고 알려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61 저희가 가로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 그 부친께 형용하여 무엇으로 이름하려 하는가 물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의 이름을 자신들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의 이름을 따라 짓는 관습이 있었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조상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의미가 있었으며, 그 아이가 어느 가문에 속해 있는지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했다. 적어도 아버지나 어머니의 이름을 따라 짓기도 했다. 엘리사벳의 이웃들과 친족들은 엘리사벳에게 그녀의 가문에는 요한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상기시켰다.

그다음 그들은 사가랴에게 몸짓으로 물어보며, 그가 아이의 이름을 무엇이라고 짓기를 원하는지 물었다.

63 저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은 요한이라 쓰매 다 기이히 여기더라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이때 사가랴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에게 몸짓으로 자신에게 서판을 가져다 달라고 하여 자신의 대답을 글로 썼다. 사람들이 그의 대답을 보고 놀랐는데, 그것은 엘리사벳이 방금 말한 것과 똑같이 아이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썼기 때문이다.

그러자 즉시 사가랴의 입과 혀가 풀렸다. 그는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 일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말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었다(누가복음 1장 20절). 그는 곧 말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중에 두루 퍼지매

여기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살던 동네 주변에 거주하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 모든 말”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난 일,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은 일, 세례 요한의 이름을 지은 일, 사가랴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가 다시 말을 하게 된 일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가리킨다. 이 모든 이야기는 그들이 살던 성읍을 넘어 유대 지방의 산간 지역에 있는 여러 성읍으로 널리 퍼져 나갔으며, 예루살렘까지 전해졌다. 사가랴는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섬기던 제사장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므로, 아마도 그가 다른 제사장들에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직접 이야기했을 수도 있다.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가로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꼬 하니 이는 주의 손이 저와 함께하심이러라

그 당시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것이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일을 마음에 새기고 세례 요한의 장래에 대하여 서로 물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목적을 위하여 세례 요한을 따로 구별하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세례 요한과 함께한다고 믿었다. “주의 손이 함께한다”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에게 능력을 주시고 그를 보호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다.

67 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예언하여 가로되

68 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아보사 속량하시며

사가랴는 성령의 감동을 받아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동시에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그의 첫 번째 말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말이었으며,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실제로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민족과 모든 나라의 하나님이시다(열왕기하 19장 15절; 이사야 37장 16절). 그러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자신들의 하나님으로 인정할 때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도 바울이 “나의 하나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에도, 그는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개인적인 관계를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분은 바울을 구속하신 하나님이시며, 바울은 그분의 구속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온 마음으로 그분을 경외하고 섬기며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감동으로 사가랴는 세례 요한의 탄생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찾아오셔서 구속하시는 일의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당시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계시가 아직 주어지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신 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원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예수님께서 사도들을 보내 복음을 전하게 하실 때에도,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의 죽음을 완성하시기 전이었으므로 사도들을 오직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어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마태복음 10장 5절부터 6절까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야 제자들을 보내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마가복음 16장 15절; 마태복음 28장 19절).

69 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구원의 뿔”이라는 명사는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뿔은 힘을 상징한다. 뿔은 일부 짐승들이 공격과 자기방어를 위해 사용하는 무기이기 때문이다. “구원의 뿔”은 구원의 능력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죄의 종 됨과 죄를 지은 결과로부터 구원하시는 능력이시다. 다윗 왕은 하나님, 곧 스스로 계시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구원의 뿔”이라고 불렀다(사무엘하 22장 3절; 시편 18편 2절).

그리스도께서 다윗 왕의 가문에서 태어나신 사건을 두고, 사가랴는 그것을 다윗의 집에 일어난 구원의 뿔이 돋아난 일이라고 표현하였다.

70 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선포하도록 사용하시는 사람이다. “거룩한 선지자”라는 명칭은 그 선지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따로 구별된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되었다. 옛날부터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하여 예언하였다. 예를 들어, 창세기 49장 10절의 야곱과 신명기 18장 15절의 모세, 이사야 9장 6절부터 7절까지와 이사야 53장의 이사야가 그러하다. 성령께서는 누가를 통하여, 모세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선지자들이 기록한 말씀과 성경 전체에서 자신에 대하여 기록된 것들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두 제자에게 설명해 주셨다는 사실을 증언하셨다(누가복음 24장 27절).

71 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이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된 구원의 뿔은 바로 그리스도이시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기 위하여 오셨다. 그들의 대적들은 사탄과 그의 악한 영들, 곧 그들을 죄짓도록 유혹하는 자들이며, 또한 육체의 부정한 욕망, 곧 죄를 짓도록 이끌며 하나님을 거역하게 하는 욕망이다. 그리고 죄를 지은 결과인 죽음과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도 그들의 대적이다.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들의 손”이라는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는 자들의 지배와 억압을 의미한다. 그들은 마귀와 이스라엘 백성을 대적하는 모든 민족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거나 종으로 삼으려고 하는 자들이다.

72 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 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맹세라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그때가 이르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베푸신 긍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실 때가 되었다.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의 탄생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이면서 동시에 온 인류의 구원인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자신의 거룩한 언약을 친히 다시 상기시키셨다. 그 언약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언약이었다(창세기 22장 16절). 이 언약을 거룩한 언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무조건적인 언약이며 결코 변하지 않는 언약이기 때문이다.

이 언약은 아브라함의 육체적인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을 포함할 뿐만 아니라, 모든 민족 가운데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모든 사람도 포함한다. 이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복을 누리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하여 민족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고 세 번 말씀하셨다(창세기 22장 18절; 26장 4절; 28장 14절). 사도 바울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표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갈라디아서 3장 16절: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그리고 바로 그 사도 바울도 성령의 감동을 받아 모든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쳤다. (갈라디아서 3장 29절):“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누구든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이 아브라함의 후손에 속한 사람이라고 여기신다. 그 사람이 어느 민족에 속해 있든지 그러하다.

74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75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71절의 설명에서 언급한 “대적들”은 사탄과 그의 악한 영들, 육체의 부정한 욕망, 죽음과 죄를 지은 결과, 그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을 대적하는 모든 세력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 사람은 이 땅에서 남은 생애 동안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과 의로움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지 않는 것이다. 의로움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위하여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을 행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소수의 사람들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거부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 주신 구원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 사람들의 손에 넘겨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한 민족으로서 자신들의 모든 대적들 앞에서 고난을 겪게 되었다. 서기 70년에 예루살렘 성과 하나님의 성전이 로마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으며, 수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죽임을 당했고,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예루살렘에서 거주하는 것이 금지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1939-1945년) 동안에는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 독일의 감옥과 가스실에서 학살당했다.

오늘날까지도 이스라엘 백성은 한 민족으로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여전히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호세아의 예언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죽은 지 이틀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살리실 것이다. 호세아 6장 1절부터 3절까지: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리라”.

호세아 6장 2절에 기록된 ‘이틀’이라는 예언의 기간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그리스도를 거부해 온 2,000년의 기간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리스도를 거부하였고, 27년 유월절에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였다. 2027년 유월절이 되면 정확히 2,000년이 된다.

하나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시편 90편 4절; 베드로후서 3장 8절). 그러므로 우리는 2027년 유월절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이 영적으로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이라고 믿을 수 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육적으로 다시 살리셨는데, 단 하루 만에 그들이 국가로 재건되게 하셨다. 그날은 1948년 5월 14일이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영원히 주겠다고 약속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이스라엘 무화과나무’를 다시 심으셨다.

1967년 6월 7일에는 아랍 국가들의 연합군과 벌인 육일 전쟁을 통하여 이스라엘이 예루살렘 전체에 대한 주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때 이스라엘 무화과나무가 잎사귀를 내기 시작하고 싹을 틔우기 시작한 것이다(마태복음 24장 32절부터 34절까지). 이는 에스겔 37장에서 예언된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영적으로 다시 살리실 일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그다음에는 하나님께서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대로, 칠 년 동안 지속되는 대환난의 때를 통하여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교회는 대환난의 때가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나타나셔서 세상에서 데리고 가실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3장 10절에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에 따른 것이다.

76 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예비하여

하나님의 긍휼과 신실하심을 찬양한 후,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인 세례 요한에 대하여 예언하기 시작하였다.

세례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라고 불릴 것이며, 곧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것이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사역을 수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하나님의 긍휼과 신실하심을 찬양한 후, 사가랴는 자신의 아들인 세례 요한에 대하여 예언하기 시작하였다.

세례 요한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선지자라고 불릴 것이며, 곧 하나님의 대변자로서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사람들에게 선포할 것이다.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기 전에 사역을 수행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준비시키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그분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게 할 것이다.

77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

세례 요한은 이스라엘 백성이 그의 선포와 외침을 듣고, 자신을 낮추어 죄를 회개하며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깨닫게 하였다. 그들이 받은 세례는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자신의 마음이 깨끗하게 씻기는 것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78 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을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구원은 죄의 권세와 죄를 지은 결과에서 구원받는 것이다. 죄의 권세는 죄를 지은 사람이 죄를 짓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하며, 죄를 지은 결과는 영원한 죽음이다. 구원은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용서로 말미암아 얻어진다. 용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긍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시는 구원은 높은 곳에서 떠오르는 새벽빛이 어둠에 잠긴 땅을 비추는 것과 같다.

79 어두움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취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 

어둠에 앉아 있다는 것은 죄를 짓는 것에 매여 있다는 뜻이다.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다는 것은 죽음의 권세 아래 있으며 죽음에 뒤덮여 있다는 뜻이다. 어둠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비치는 하나님의 구원의 빛은 그들을 죄를 짓는 데서 구원하는 것이며,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비치는 빛은 그들을 죄를 지은 결과에서 구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구원을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 사람은 즉시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고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며, 죄를 지은 것에 대한 형벌, 곧 지옥의 불 속에서 받게 될 영원한 죽음에서 벗어나게 된다. 또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빛으로 인도받아 평안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

세례 요한은 자라면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한 영을 가지게 되었다. 아마도 요한은 스무 살이 되었을 때부터 가족을 떠나 광야에서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나 죄를 회개할 것을 선포하고, 그리스도께서 오실 것을 준비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준비시키며 회개를 촉구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모든 인류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감사하자. 그 은혜로 말미암아 이제 우리 각 사람은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들과 딸들이라는 신분을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존재하기 전부터 우리를 미리 아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가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하였을 때 우리를 택하셨다. 우리 각 사람을 향하신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의 삶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하시는 것이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유업, 곧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을 다스리게 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온 마음으로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무기와 전능하신 능력을 힘입어 모든 시험과 유혹을 이기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미리 준비하신 선한 일을 완수하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를 하자.

우리가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어떤 이유로든 넘어져 죄를 지었다면, 속히 주님께 나아가 진심으로 회개하고 통회하며, 우리를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하자. 베드로처럼 영으로 회개하고 담대하게 일어나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맡기신 사역을 계속 수행하자. 가룟 유다처럼 이성으로만 회개하여 스스로 교회와 주님과 그분의 긍휼에서 오는 은혜와의 교제를 끊어 버리지 말자.

이것으로 이 과의 공부를 마친다.

성령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6장 13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7장 17절). 평강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흠 없이 보존되게 하시기를 바란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그리고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맞이할 준비가 되게 하시기를 바란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