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6 . 그리스도의 족보 [제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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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장 1절에서 17절까지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누가복음 3장 23절에서 31절까지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24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얀나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25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아모스요 그 이상은 나훔이요 그 이상은 에슬리요 그 이상은 낙개요

26 그 이상은 마앗이요 그 이상은 맛다디아요 그 이상은 서머인이요 그 이상은 요섹이요 그 이상은 요다요

27 그 이상은 요아난이요 그 이상은 레사요 그 이상은 스룹바벨이요 그 이상은 스알디엘이요 그 이상은 네리요

28 그 이상은 멜기요 그 이상은 앗디요 그 이상은 고삼이요 그 이상은 엘마담이요 그 이상은 에르요

29 그 이상은 예수요 그 이상은 엘리에서요 그 이상은 요림이요 그 이상은 맛닷이요 그 이상은 레위요

30 그 이상은 시므온이요 그 이상은 유다요 그 이상은 요셉이요 그 이상은 요남이요 그 이상은 엘리아김이요

31 그 이상은 멜레아요 그 이상은 멘나요 그 이상은 맛다다요 그 이상은 나단이요 그 이상은 다윗이요 

32 그 이상은 이새요 그 이상은 오벳이요 그 이상은 보아스요 그 이상은 살몬이요 그 이상은 나손이요 

33 그 이상은 아미나답이요 그 이상은 아니요 그 이상은 헤스론이요 그 이상은 베레스요 그 이상은 유다요 

34 그 이상은 야곱이요 그 이상은 이삭이요 그 이상은 아브라함이요 그 이상은 데라요 그 이상은 나홀이요 

35 그 이상은 스룩이요 그 이상은 르우요 그 이상은 벨렉이요 그 이상은 헤버요 그 이상은 살라요 

36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37 그 이상은 므두셀라요 그 이상은 에녹이요 그 이상은 야렛이요 그 이상은 마할랄렐이요 그 이상은 가이난이요 

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이 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기록된 두 성경 본문에 나오는 말씀의 의미를 함께 살펴보려고 한다.

먼저 마태복음 1장 1절부터 17절까지의 말씀부터 시작하겠다.

1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한 책을 그분의 족보로 시작한다. 다시 말하면, 마태는 그리스도에 관하여 말하기에 앞서 예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시며,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조상들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아이심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그리스도라는 칭호는 그리스어에서 히브리어의 메시아라는 칭호를 번역한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기름을 부으시고 직분을 맡기셔서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백성을 섬기도록 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그 약속은 이천 년이 훨씬 이전부터 주어졌으며, 구약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반드시 다음 사람들의 후손이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브라함: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창세기 22장 18절)

  • 이삭:“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세기 17장 19절)
  • 야곱: “내가 그를 보아도 이 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민수기 24장 17절).
  • 이새: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 (이사야 11장 1절).
  • 다윗:“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행사하며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행할 것이며.”(예레미야 23장 5절).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외에도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시기 700년이 훨씬 이전부터 그분의 탄생에 관한 예언들이 있었다. 이러한 예언들을 통하여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다 지파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미가 5장 2절).

 

  • 그리스도께서는 베들레헴 성에서 태어나실 것이다. (미가 5장 2절).

 

  • 그리스도께서는 한 처녀에게서 태어나실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너희에게 한 표적을 주실 것이다. 보라, 한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이다.” (이사야 7장 14절).

 

  •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어린아이들이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분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신다. ‘라마에서 슬픔과 통곡과 심히 애곡하는 소리가 들린다. 라헬이 자기 자녀들을 위하여 울며, 그들이 더 이상 없으므로 위로받기를 거절한다.’” (예레미야 31장 15절).

 

  • 그리스도께서는 피난하기 위하여 부모님과 함께 이집트로 가게 되실 것이다.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그를 사랑하였고, 내가 이집트에서 내 아들을 불러내었다.” (호세아 11장 1절).

그러므로 마태는 예수님의 족보를 시작하면서 그분이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이심을 분명하게 선언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여러 곳에서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여 그 예언들이 예수님에게 성취되었음을 증명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바로 그리스도이심을 보여 주었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자손이심을 밝힘으로써,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서 다스릴 권세를 가지신 분임을 확증하였다. 예수님은 예언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한 왕이시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한 “왕들의 왕이시며 주들의 주”라는 칭호를 가지신 분이시므로, 모든 민족의 영원한 왕이시기도 하다.

다윗의 자손이라면 당연히 아브라함의 자손이기도 하다. 다윗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자손이심을 특별히 언급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예수님께서 바로 모든 민족이 그분을 통하여 복을 받게 될 분이심을 상기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분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예언하신 말씀이다(창세기 22장 18절).

2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족보에서 마태는 두 번에 걸쳐 “그의 형제들”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첫 번째는 여기에서 사용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기원을 상기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유다 지파에 속하시지만, 이스라엘 열두 지파 전체와 관련이 있으시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리실 왕이 되실 것이기 때문이다.

야곱이 선포한 축복과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권세가 영원히 유다 지파에 속할 것임을 알 수 있다.

창세기 49장 8절부터 10절까지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찌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 갔도다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그를 범할 수 있으랴 

홀이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왕홀”은 왕권, 곧 왕이 다스리는 권세를 상징하는 지팡이다. “입법자의 지팡이”는 왕홀로 상징되는 권한에 따라 법을 제정하고 선포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왕이 왕좌에 앉아 손에 왕홀을 들고, 그것을 두 다리 사이에 세워 둔 채 명령을 내리는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다.

족보가 아브라함, 이삭, 야곱으로 시작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되었고, 이삭과 야곱을 통하여 다시 확증되었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들의 기원을 말할 때 흔히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또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관용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언제나 다음 사실을 기억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열두 족장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그들의 세대에 걸친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셨다.

하나님께서는 단지 그들의 하나님이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 각자의 조상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조상들에게 약속을 주셨으며, 그 약속을 바로 그들의 후손에게 이루실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께 순종하기만 하면 된다.

3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다말은 유다의 며느리였다. 유다는 에르, 오난, 셀라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유다는 다말을 에르에게 아내로 주었지만, 에르가 악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이셨다. 유다는 오난에게 형을 대신하여 다말과 결혼하고 형의 후손을 이어 주라고 하였다. 그러나 오난은 다말이 임신하지 못하도록 고의로 행하였으므로 그 역시 하나님께 죽임을 당하였다.

유다는 다말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과부로 지내면서 셀라가 장성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유다의 속마음은 셀라를 다말과 결혼시키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셀라도 두 형들처럼 죽을까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른 후 유다의 아내가 죽었다. 유다는 자기 양털을 깎는 일을 맡은 사람들을 찾아가려고 길을 떠났다. 다말은 유다가 길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얼굴을 가리고 변장하여 창녀처럼 꾸민 다음, 유다가 가는 길에 있는 한 성문 곁에 앉았다. 유다는 다말을 창녀로 생각하고 그녀에게 성관계를 하자고 제안하였다.

다말이 그 대가로 무엇을 주겠느냐고 묻자, 유다는 염소 새끼 한 마리를 주겠다고 하였다. 다말은 유다에게 그 약속의 증표를 달라고 요구하였다. 유다는 다말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던 도장과 그 끈과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주었다. 그리고 유다는 다말과 성관계를 가졌다.

그 후 유다는 친구를 보내 염소를 가져다주고 증표를 되찾아 오게 하였다. 그러나 유다의 친구는 유다가 창녀라고 생각했던 여자를 찾지 못하였다. 그 지역 사람들도 그곳에는 창녀가 없다고 친구에게 알려 주었다.

약 세 달 후, 어떤 사람들이 유다에게 그의 며느리 다말이 창녀처럼 행하여 임신하였다고 알렸다.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사람들이 다말을 끌어내어 처벌하려 할 때, 다말은 그들에게 자신이 임신하게 된 사람의 증표들을 유다에게 가져가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 증표들을 가진 사람에 의해 자신이 임신하였다고 유다에게 말해 달라고 하였다.

유다는 그 증표들을 보고서야 자신이 다말에게 속았음을 깨달았다. 유다는 다시는 다말과 동침하지 않았다. 다말은 해산할 때가 되어 쌍둥이를 낳았으며, 그들의 이름을 베레스와 세라라고 하였다(창세기 38장).

베레스와 세라가 둘 다 이곳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비록 예수님께서는 베레스의 계통에서 나셨지만, 두 사람의 이름이 모두 기록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다말이 아이를 낳을 때 세라가 먼저 손을 내밀었고, 산파가 그의 손목에 붉은 실을 매어 주었다. 그러나 세라는 손을 다시 거두었고, 베레스가 먼저 태어났다. 이는 하나님께서 베레스를 선택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태가 이 경우에 다말의 이름을 기록한 이유는 특이한 경우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여인이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 사람이었다. 다말은 가나안 사람이었다.

4 람은 아미나답을 낳고 아미나답은 나손을 낳고 나손은 살몬을 낳고 

5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 보아스는 룻에게서 오벳을 낳고 오벳은 이새를 낳고 

3절 후반부와 마찬가지로 4절도 건너뛰도록 하겠다. 4절 역시 특별한 내용 없이 여러 세대의 이름만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5절에서는 마태가 다시 살몬의 아내 라합과 보아스의 아내 룻에 관하여 특별히 기록한다. 그 이유 역시 라합과 룻이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은 두 여인이었기 때문이다. 라합은 가나안 민족에 속하였고, 룻은 모압 민족에 속하였다.

여호수아 2장은 라합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여호수아는 정보를 수집하기 위하여 두 명의 정탐꾼을 성 안으로 보냈다. 두 정탐꾼은 성 안으로 들어가 라합이라는 창녀의 집에 숨어 있었다.

여리고 왕이 보낸 군사들이 두 정탐꾼을 찾기 위하여 라합의 집에 와서 묻자, 라합은 두 정탐꾼을 지붕 위에 숨겨 놓고 그들이 이미 성을 떠났다고 군사들에게 거짓말하였다.

라합이 자기 왕을 배반하고 군사들에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여리고 성을 이스라엘 백성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라합은 두 정탐꾼에게 이스라엘 백성이 성을 점령할 때 자신의 가족의 생명을 살려 주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요청하였다.

여호수아는 두 정탐꾼이 라합에게 한 약속을 지켜 라합의 온 가족의 생명을 살려 주었다. 후에 성경은 라합이 그렇게 행한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며, 두 정탐꾼을 구해 준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고 알려 준다.

히브리서 11장 31절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야고보서 2장 25절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라합의 남편 살몬은 아마도 그 두 정탐꾼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았던 두 번째 여인으로서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된 것이다.

룻기는 사사 시대에 있었던 한 이스라엘 가정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흉년 때문에 그 가족은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이주하였다. 그 후 남편이 죽어 아내와 두 아들만 남게 되었다. 남편의 아내였던 나오미는 두 아들을 위하여 모압 여인 두 명을 아내로 맞아 주었다.

약 10년이 지난 후 두 아들 모두 죽고, 나오미에게는 두 며느리만 남게 되었다. 나오미는 고향에서 흉년이 끝났다는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두 며느리도 모두 나오미를 따라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나오미는 자신에게 더 이상 그들과 결혼시킬 아들이 없으므로, 그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 부모와 함께 지내다가 다른 남편을 맞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두 며느리 가운데 한 사람인 룻은 끝까지 나오미를 따라가겠다고 고집하였다.

룻은 나오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룻기 1장 16절과 17절

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는 룻이 자신을 따라오도록 허락하였다. 고향으로 돌아온 후, 나오미의 가족과 가까운 친족인 보아스가 율법에 따라 나오미 가족의 기업을 무를 권리가 있는 사람으로서 그 기업을 대신 무르고, 룻을 아내로 맞아 나오미의 남편 가문의 대를 이어 줄 자녀를 낳게 하였다.

그리하여 모압 여인 룻은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되었다. 룻은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세 번째 여인이다.

6 이새는 다윗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이 세부적인 내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마태복음에 기록된 족보의 두 번째 부분에 나오는 14명의 사람은 모두 유다 왕국의 왕들이었다. 그런데 마태는 다윗의 이름에만 “왕”이라는 직함을 덧붙였다.

이는 마태가 다윗의 왕위가 다른 왕들의 왕위와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고자 했음을 의미한다. 다윗의 왕위는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으로서 영원히 존속할 것이다. 마태는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위를 이어받을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다윗의 이름에 “왕”이라는 직함을 덧붙인 것이다.

또한 이 구절에서 마태는 네 번째로 예수님의 조상 가운데 한 여인을 언급한다. 그 여인은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였던 밧세바이다. 밧세바는 후에 다윗 왕의 아내가 되었으며, 솔로몬과 나단의 친어머니가 되었다.

이번에는 밧세바가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은 여인이었기 때문에 언급된 것이 아니다. 밧세바는 헷 사람인 우리아와 결혼하였지만, 그녀 자신은 이스라엘 백성에 속한 사람이었다.

마태가 밧세바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고 “우리아의 아내”라고 기록한 것은 다윗 왕이 자신의 매우 충성스러운 군인이었던 우리아에게서 밧세바를 빼앗았기 때문이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고 그의 남편을 죽게 한 사건은 사무엘하 11장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마태는 이를 통하여 다윗 왕의 죄를 상기시키는 동시에,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자비도 암시하고자 하였다. 시편 51편은 다윗이 지은 시편 가운데 하나이며, 그가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의 선지자가 찾아와 자신의 죄를 지적하였을 때 나타낸 깊은 회개와 통회의 마음을 표현한 시편이다.

이처럼 예수님의 족보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속하지 않았던 세 여인이 그분의 조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다윗 왕에게 빼앗겼던 한 여인도 예수님의 조상이 되었다.

7 솔로몬은 르호보암을 낳고 르호보암은 아비야를 낳고 아비야는 아사를 낳고 

8 아사는 여호사밧을 낳고 여호사밧은 요람을 낳고 요람은 웃시야를 낳고

7절은 특별히 설명할 내용이 없으므로 건너뛰도록 하겠다. 8절에는 설명이 필요한 세부적인 내용이 있다.

요람부터 웃시야까지 이어지는 계보에서 마태는 세 왕의 이름을 연속해서 생략하였다. 그들은 아하시야, 요아스, 아마샤이다(역대상 3장 11절과 12절). 앞의 글에서 살펴본 것처럼, 이 세 왕의 이름이 생략된 것은 아하시야의 어머니이며 요아스의 할머니이고 아마샤의 증조할머니인 아달랴 왕비의 악행 때문이다. 웃시야 왕은 아달랴로부터 네 대째 내려온 후손이다.

성경의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에서는 “낳다”라는 동사를 실제로 자녀를 낳는 경우뿐만 아니라 여러 세대 뒤의 손자와 증손자 등의 후손을 가리킬 때에도 자주 사용한다.

예를 들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았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이 경우에는 이삭이 아브라함의 아들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이삭과 야곱과 유다를 낳았다…”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이는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를 낳았다는 의미이다.

성경에는 한 사람의 모든 후손을 통칭하여 “아들들”이라고 부르는 한 가지 대표적인 예가 있다.

“유다의 아들들은 베레스와 헤스론과 갈미와 훌과 소발이다.” (역대상 4장 1절).

실제로 베레스는 유다의 아들이고, 헤스론은 베레스의 아들이며, 갈미는 헤스론의 아들이다. 훌은 갈미의 아들이고, 소발은 훌의 아들이다.

9 웃시야는 요담을 낳고 요담은 아하스를 낳고 아하스는 히스기야를 낳고 

10 히스기야는 므낫세를 낳고 므낫세는 아몬을 낳고 아몬은 요시야를 낳고 

11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를 낳으니라 [아마도 일부 사본에서 여호야김이라는 이름을 여고냐라는 이름으로 잘못 기록했을 가능성이 있다. 여고냐, 곧 여호야긴은 여호야김의 아들이다(열왕기하 24장 6절).]

9절과 10절은 특별한 내용이 없는 단순한 세대의 목록이므로 건너뛰도록 하겠다.

11절에는 신약성경의 헬라어 사본들에서 여호야김이라는 이름이 여고냐라는 이름으로 잘못 기록되었을 가능성에 대한 의문이 있다. 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여고냐는 여호야긴이라고도 하며 여호야김의 아들이다. 그리고 여호야김은 요시야의 아들이다. 그러므로 11절은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

*11 요시야가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던 때에 여호야김과 그의 형제들을 낳았다. [열왕기하 24장 6절]*

여호야김의 이름을 제외한다면 족보의 세 번째 부분에는 14개의 이름이 되지 않는다. 또한 여호야김의 이름을 제외할 이유도 없다. 여호야김은 11년 동안 왕으로 다스렸지만, 여고냐는 불과 3개월 동안만 왕으로 다스렸기 때문이다.

12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에 여고냐는 스알디엘을 낳고 스알디엘은 스룹바벨을 낳고 

역대상 3장16절부터 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6 여호야김의 아들들은 그 아들 여고냐, 그 아들 시드기야요 

17 사로잡혀 간 여고냐의 아들들은 그 아들 스알디엘과 

18 말기람과 브다야와 세낫살과 여가먀와 호사마와 느다뱌요 

19 브다야의 아들들은 스룹바벨과 시므이요 스룹바벨의 아들은 므술람과 하나냐와 그 매제 슬로밋과 

이는 브다야가 스알디엘의 동생이고, 스알디엘의 동생인 브다야의 아들이 스룹바벨이며, 따라서 스룹바벨은 스알디엘의 조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에스라 3장 2절, 8절; 5장 2절, 느헤미야 12장 1절, 학개 1장 1절, 12절, 14절; 2장 2절, 23에는 스룹바벨이 분명히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이해할 수 있다. 스알디엘에게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동생 브다야의 아들을 양자로 받아 대를 잇게 했을 수 있다. 또는 스알디엘이 자녀 없이 죽었기 때문에 브다야가 자신의 형제인 스알디엘의 과부와 결혼하여 형을 대신하여 후손을 낳게 했을 수도 있다.

따라서 스룹바벨은 혈육으로는 브다야의 아들이지만, 법적으로는 스알디엘의 아들이라고 할 수 있다.

13 스룹바벨은 아비훗을 낳고 아비훗은 엘리아김을 낳고 엘리아김은 아소르를 낳고

이 구절에서 마태는 스룹바벨의 아들을 아비훗이라고 기록한다.

역대상 3장 19절에 따르면 스룹바벨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그들의 이름은 므술람과 하나냐이며, 딸은 한 명으로 슬로밋이다. 또한 역대상 3장 20절에 따르면 스룹바벨에게는 다섯 명의 아들이 더 있었는데, 아마도 다른 아내에게서 태어난 아들들로 보이며, 그들의 이름은 하수바, 오헬, 베레갸, 하사댜, 유삽헤셋이다.

그런데 역대상에 기록된 스룹바벨의 아들들의 명단에는 아비훗이라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따라서 아비훗은 므술람이나 하나냐의 다른 이름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로 한 사람이 두 개 이상의 이름을 갖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생활 환경이 바뀌면서 스스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고, 그들을 포로로 잡아간 사람들이 그들의 이름을 바꾸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약성경에는 엘리아김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두 명 기록되어 있다. 한 사람은 레위 지파에 속한 대제사장 힐기야의 아들이다(열왕기하 18장 18절; 22장 4절). 또 한 사람은 요시야 왕의 아들로서, 이집트의 바로가 그를 유다 왕으로 세우고 그의 이름을 여호야김으로 바꾸었다. 이 두 사람 모두 아비훗의 아들일 수 없다.

아소라는 이름도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14 아소르는 사독을 낳고 사독은 아킴을 낳고 아킴은 엘리웃을 낳고 

15 엘리웃은 엘르아살을 낳고 엘르아살은 맛단을 낳고 맛단은 야곱을 낳고

사독부터 엘리웃까지의 이름들도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구약성경에는 엘르아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명 나오지만, 그들은 모두 엘리웃보다 수백 년 전에 태어난 사람들이다.

맛단이라는 이름도 구약성경에는 나오지 않는다.

구약성경에 기록된 야곱이라는 이름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뿐이며, 그 외에 다른 사람이 야곱이라는 이름을 가졌다는 기록은 구약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우리는 스룹바벨 시대부터 예수 그리스도에 이르기까지 마태가 다윗 왕의 후손들이 산헤드린에 등록한 족보 기록을 바탕으로 족보의 명단을 기록했으며, 그 족보 기록은 산헤드린에 의해 필사되고 보관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16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Christ는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으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맡기신 직분과 권위와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을 나타낸다.]*

이 구절은 요셉의 친아버지가 야곱이며, 일부 사람들이 누가복음 3장 23절을 해석하면서 주장하는 것처럼 헬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증한다.

또한 이 구절은 요셉이 예수 그리스도를 낳았다고 기록하지 않고, 요셉의 아내인 마리아에게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셨다고 분명히 밝힌다.

마태는 이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잉태되시고 태어나셨는지에 대한 사건을 기록하면서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할 것이다.

17 그런즉 모든 대 수가 아브라함부터 다윗까지 열 네 대요 다윗부터 바벨론으로 이거할 때까지 열 네 대요 바벨론으로 이거한 후부터 그리스도까지 열 네 대러라 

많은 사람은 마태가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의도적으로 세 부분으로 균등하게 나누어 각 부분을 14대씩 되도록 배열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앞의 글에서 설명한 것처럼, 마태는 실제 자료에 따라 족보를 기록했으며, 족보의 첫 번째 부분과 세 번째 부분은 각각 14대이다.

반면 족보의 두 번째 부분은 원래 17대이지만, 마태는 성령의 감동을 따라 악한 왕비 아달랴에게서 나온 세 왕의 이름을 생략하였다. 아달랴는 악한 왕비였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악행으로 인해 삼 대까지 그 후손을 벌하셨다.

그러므로 마태가 기록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가 14대씩으로 구성되도록 된 것은 단순히 마태가 의도적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뜻에 따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 누가복음 3장 23절부터 38절에 기록된 두 구절의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곧 족보의 시작을 알리는 구절과 족보를 마무리하는 구절이다. 그 두 구절 사이에 있는 나머지 구절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이름을 나열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이상은 헬리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 서른 살쯤 되셨을 때”라는 표현은 주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신 때를 가리킨다. 주님께서는 21절과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인류의 죄에 대한 형벌을 담당하시기 위해 받으신 침례를 통해 사역을 시작하셨다.

성경에 기록된 여러 내용과 역사적 자료를 서로 대조해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서기 25년 유월절을 얼마 앞두고 침례를 받으셨다. 이 유월절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처음으로 깨끗하게 하신 때이며, 요한복음 2장 13절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서기 26년 유월절을 앞두고 오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많은 빵과 물고기를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셨다. 이 사건은 요한복음 6장 4절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서기 27년 유월절을 앞두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두 번째로 깨끗하게 하셨다. 이는 요한복음 13장 1절에 언급되어 있다. 그 후 주님께서는 유월절 당일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며, 율리우스력(Julian Calendar)에 따르면 서기 27년 4월 9일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서기 25년 유월절을 앞두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 서른 살이 되셨다. 유월절은 성경력으로 첫째 달 니산월 14일이며, 유대력으로도 같은 시기에 해당한다. 양력으로는 대략 3월 중순부터 4월 중순에 해당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늦가을에 태어나셨으며, 아마도 초막절 첫날인 성경력 일곱째 달 티쉬리월 10일에 태어나셨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는 양력으로 대략 9월 말부터 10월 말에 해당한다.이는 서기전 24년 10월경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 30세가 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서기전 7년 10월경에 태어나셨다고 볼 수 있다.

서기전 1년과 서기 1년 사이에는 0년이 없다. 그러므로 서기전 7년부터 서기 24년까지는 정확히 30년이 된다.

“관례상 요셉의 아들로 여겨졌다”라는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셉의 친아들이 아니며, 요셉의 혈통을 이어받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주석으로 밝히고 확증하는 말씀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마리아의 혈통을 이어받으셨으며, 족보에는 마리아의 이름이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누가복음 3장 23절은 다음과 같이 읽어야 한다.

*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할 때에 삼십세쯤 되시니라 (관례상 요셉의 아들로 여겨졌으며) 헬리에게 속하였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이해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침례를 받으실 때(21절과 22절), 약 서른 살쯤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머니 마리아를 통해 헬리의 혈통에 속하셨지만, 관례상으로는 요셉의 아들로 여겨지셨다. 또한 마타닷, 레위, 멜기, 얀네 등의 혈통에도 속하셨다(24절터 38절까지).

누가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기록함으로써 주님께서 완전한 사람이시며 인류의 혈통에서 나신 분이시지만, 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께 속하였다”라는 표현은 인류의 근원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동시에, 아담이 창조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온 인류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창조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자녀이기도 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 역시 마리아에게서 나셨기 때문에 창조의 측면에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은 출생의 측면에서도 하나님의 자녀이다. 이는 주님께서 하나님에 의해 처녀 마리아의 태 안에서 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독생자라고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을 거듭나게 하셔서 자신의 아들과 딸의 신분에 이르게 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맏아들이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의 두 족보는 서로를 보완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사람이시며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준다. 그분은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시기 2천 년도 더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분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약 2천 년 후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인류의 구속을 완성하신 후 다시 오실 분이다. 그때 주님께서는 죄를 진심으로 회개하고 주님의 구원을 믿으며 주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인 자신의 교회를 데리고 천국으로 들어가실 것이다. 그리고 그 후에 마지막 때가 시작될 것이다.

약 7년이 지난 후에는 주님께서 자신의 교회와 천사들과 함께 이 땅에 강림하셔서 마지막 때를 끝내시고 천년왕국을 세우실 것이다.

우리 각 사람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었으며, 우리의 육신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날에는 우리 각 사람의 이름도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기록될 것임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6장 13절).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바란다(요한복음 17장 17절). 평강의 하나님, 곧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육신을 온전히 거룩하게 하셔서 흠 없이 보존하시고(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하시기를 바란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