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7 .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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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성경에 있는 네 복음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이다. 네 복음서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기록하고 있지만, 각 책의 시작은 서로 다르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신성을 소개하는 말씀으로 시작하며, 그분을 “말씀”이라는 칭호로 소개한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며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소개하면서 시작한다. 또한 솔로몬의 계보를 따른 족보를 기록하여, 예수님께서 다윗의 왕좌에 앉으실 자격을 충분히 갖추신 분이심을 증명한다.

마가복음은 예수님의 사역을 위하여 길을 준비한 사람인 세례 요한의 사역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누가복음은 그리스도의 복음과 관련하여 일어난 일들을 처음부터 정확하게 살펴서 차례대로 기록하겠다는 확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이어서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기록한다.

그러므로 누가는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을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으로 본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은 실제로 주님의 천사가 세례 요한의 아버지에게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을 예언한 사건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세례 요한이 태어난 목적은 그가 그리스도보다 앞서 가서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또한 구약성경에서 이미 예언된 일이었다.

이 글에서 우리는 누가복음 1장 1절에서 25절의 의미를 함께 살펴볼 것이다. 여기에는 누가가 기록한 누가복음의 서론과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이 포함된다.

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2 처음부터 말씀의 목격자 되고 일군 된 자들의 전하여 준

“많은 사람이 손을 대어 정리하였다”는 말은 많은 사람이 일어난 사건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였다는 뜻이다.

“우리 가운데서 확실히 믿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는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 가운데, 누가와 누가가 알고 지내던 주 안의 형제자매들이 믿고 받아들인 것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처음부터 목격자가 되고 말씀의 일꾼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하여 준 대로”라는 말은 누가와 그의 동료들이 그 일들을 기록한 사람들이 전하여 준 이야기를 믿었다는 뜻이다.

이 문장에서 사용된 “전하여 주다”(G3860)라는 동사는 고린도전서 11장 23절에서도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이다. 이 단어는 전달해야 할 것을 온전히 전달하여, 한 사람의 손에서 다른 사람의 손으로 넘겨주고, 그것을 받은 사람이 그것을 온전히 보존하고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하거나, 충분히 살펴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누가가 예수님과 관련된 일들을 기록한 사람들이라고 말한 이들은 처음부터 그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한 사람들이며, 또한 바로 그분을 섬긴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누가가 “그들은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었다” 또는 “그들은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었다”라고 기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는 “그들은 말씀의 일꾼들이었다”라고 기록하였다.

이는 성령께서 누가를 통하여, 사람이 예수님을 섬기는 것은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며, 그분이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고, 동시에 말씀이라는 위격으로 계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강조하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말씀을 섬긴 사람들은 그분의 사도들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의 이름을 전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그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밤에 그분을 찾아와 경배한 목자들이 있었고, 성전에서 예수님을 만났던 시므온과 여선지자 안나가 있었으며, 그로부터 약 이 년 후에는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그분께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분을 경배하고, 그분에 관하여 전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을 섬기는 사람이다.

2절의 내용은 또한 누가가 기록한 그리스도의 복음서가 일부 성경 해석가들이 추론하는 것처럼 마가복음에서 복사하여 기록된 것이 아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누가는 처음부터 말씀을 직접 보고 섬긴 사람들이 전해 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기록하였다고 분명하게 말하기 때문이다.

마가는 처음부터 말씀을 직접 보고 섬긴 사람이 아니었다. 우리는 당시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들을 그분을 직접 보고, 그분을 믿고 받아들이며, 그분의 이름을 전한 사람들이 기록한 자료가 많이 있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한 자료들은 초대 교회의 성도들에게 전해졌다. 누가는 그러한 자료들의 내용을 모아서 자신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를 기록하는 일을 하였다.

누가가 그러한 자료들을 한 권의 책으로 종합하여 기록한 목적은 3절과 4절에서 밝히고 있다.

3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줄 알았노니

누가는 처음부터 말씀을 직접 보고 섬긴 사람들이 기록한 자료들을 읽음으로써, 처음부터 그리스도와 관련된 모든 일을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처음부터”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준비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세례 요한의 탄생에 관한 예언으로 시작되었다.

누가는 일어난 사건들을 순서대로 기록하여, 자신이 알고 지내던 데오빌로라는 사람에게 책으로 전하였다.

성경은 누가복음 1:3과 사도행전 1:1에서 데오빌로라는 이름을 두 번 언급하지만, 그에 관해서 더 자세한 내용은 기록하지 않는다. 데오빌로(데오빌로, G2321)라는 이름은 헬라어로 “하나님의 친구”라는 뜻이다.

데오빌로는 누가와 알고 지내던 로마인이나 헬라인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제자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마도 데오빌로가 누가에게 그리스도와 관련된 일들을 기록해 달라고 요청했을 것이며, 누가는 그의 요청에 응답하여 매우 긴 편지를 기록하였다. 그 편지가 오늘날 우리가 “누가에 따른 그리스도의 복음서”라고 부르는 누가복음이다.

그 후 누가는 다시 다른 매우 긴 편지를 기록하여, 초대 교회의 복음 전파 사역에 관하여 데오빌로에게 전하였다. 그 편지가 오늘날 우리가 사도행전이라고 부르는 책이다.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처음에는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두 통의 편지였지만, 성령께서는 이 두 편지가 여러 번 필사되어 널리 전파되게 하셨고, 교회의 모든 성도에게 전해지게 하셨다.

약 이천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두 편지는 세상의 수많은 사람에게 전해지고 있다. 이를 통하여 그들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되고, 그분께서 세우신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고 발전해 왔는지를 알게 된다.

데오빌로라는 이름의 의미는 매우 흥미로운 점이 있다. 그 이름은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누구든지 자연스럽게 데오빌로, 곧 “하나님의 친구”가 된다. 이는 그들이 주님의 모든 말씀을 듣고 믿으며 순종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렇게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15장 14절과 15절.

너희가 나의 명하는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니라 

하나님께서도 아브라함을 자신의 친구라고 부르신 적이 있다. 이사야 41장 8절: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나의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야고보서 2장 23절: 이에 경에 이른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데오빌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었으며, 누가의 전도를 통하여 주님을 믿게 된 사람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아마도 데오빌로는 설교를 통하여 복음을 믿고 받아들였으며, 설교를 들으면서 복음에 관하여 배웠을 것이다. 누가는 데오빌로가 복음에 관하여 배운 내용에 대해 분명하고 확실한 이해를 갖도록 돕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사건들을 하나의 문서로 정리하여 기록하였다.

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복음을 새롭게 믿고 받아들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치는 것, 곧 그분께서 명하신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에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는 마태복음 28장 20절에 기록된 바와 같다: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러한 가르침은 그들이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게 하고 세례를 받게 한 후에 이어지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는 주님의 이름을 가진 많은 교단이 복음을 새롭게 믿고 받아들인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먼저 시행한다. 그들은 이것을 “기본 교리”라고 부르며, 배우는 사람이 기본 교리에 관한 시험에 합격해야만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어긋나는 일이다. 사람은 먼저 복음을 믿고 받아들여야 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안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런 후에야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달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수 있게 된다.

5 유대 왕 헤롯 때에 아비야 반열에 제사장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사가랴요 그 아내는 아론의 자손이니 이름은 엘리사벳이라

“헤롯의 때에”라는 말은 헤롯 대왕이 유대의 왕으로 통치하던 때를 말한다. 헤롯 대왕은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유대를 다스렸다. 그는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학살하라고 명령한 사람이었다(마태복음 2장).

누가가 이 부분에서 기록한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대략 기원전 8년경이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여러 세부 내용과 역사에 기록된 여러 자료를 서로 대조함으로써 이 사실을 알 수 있다.

6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7 엘리사벳이 수태를 못하므로 저희가 무자하고 두 사람의 나이 많더라

사관과 엘리사벳 부부는 모두 아론의 자손으로서 레위 지파에 속하였다. 사가랴( G2197)라는 이름은 히브리어에서 음역된 것으로,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이가 기억하신다”라는 뜻이다. 엘리사벳( G1665)이라는 이름 역시 히브리어에서 음역된 것으로, “하나님의 맹세”라는 뜻이다.

두 사람의 이름을 함께 연결하면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이가 하나님의 맹세를 기억하신다”라는 뜻이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것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맹세, 곧 그의 씨를 통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창세기 22장 16절부터 18절까지).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준비할 사람을 태어나게 하셨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성경에서 의로운 사람들로 인정받았으며,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온전히 지켰다. 그러나 그들은 나이가 들도록 자녀가 없었다.

이 일이 일어났을 당시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몇 살이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한 표현을 보면 “두 사람은 모두 나이가 많았다”라고 하였으므로, 적어도 그들은 60세가 넘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성경에 따르면 60세가 넘은 사람은 장로로 여겨졌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아브라함과 사라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이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세례 요한의 탄생도 하나의 기적이며 하나님의 뜻에 따른 일이었다.

이것은 또한 우리의 삶에서도 때때로 하나님께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것은, 그 일을 통하여 우리의 삶 가운데 자신의 목적을 이루시고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임을 이해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 가운데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

데살로니가전서 5장 18절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우리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일임을 굳게 믿어야 한다. 욥에게 닥쳤던 여러 환난을 기억하자.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제사장의 직무를 하나님 앞에 행할쌔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고

“일어난 일”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나타난 일을 말한다. 그때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순서에 따라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다.

각 제사장 반열에는 여러 제사장이 있었으며, 그들은 서로 다른 직무를 맡아 섬겼다. 제비를 뽑은 결과 사가랴에게 맡겨진 직무는 하나님의 성전에서 향을 피우는 일이었다. 이것은 그가 자신이 맡은 봉사 기간인 칠 일 동안 수행한 일이었다.

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여기에서 말하는 향을 피우는 시간이 사가랴의 봉사 기간 중 어느 날이었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또한 그 시간이 아침에 향을 피우는 시간이었는지 저녁에 향을 피우는 시간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사가랴가 성전에 들어가 향을 피우는 의식을 행하는 동안, 많은 백성이 성전 바깥 뜰에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백성이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성전에 와서 기도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러므로 향을 피우는 시간에 많은 백성이 성전에 와서 기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간이 안식일의 아침이나 저녁에 향을 피우는 시간이었음을 의미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일 그 시간이 안식일 아침에 향을 피우는 시간이었다면, 그것은 사가랴가 맡은 봉사 기간의 마지막 향을 피우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 후에 그는 다음 제사장 반열의 제사장에게 봉사 순서를 넘겨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각 제사장 반열의 봉사 기간은 안식일 정오 이후에 시작하여 다음 안식일 정오가 되기 전에 끝났다.

11 주의 사자가 저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이 절에서 사용된 “주”라는 명사는 삼위일체 하나님 전체를 가리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성경은 천사가 사가랴에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났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다른 사례들을 볼 때, 흰 옷을 입은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가능성이 있다.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13 천사가 일러 가로되 사가랴여 무서워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갑자기 성전 안에서 자신과 함께 있는 한 사람이 나타난 것을 본 일은 사가랴를 당황하게 하고 두렵게 하였다. 그는 왜 성전 안에 사람이 나타났는지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황하였다. 또한 좋지 않은 일이 곧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천사는 사가랴가 그 말을 듣고 이해하여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도록 즉시 그에게 말하였다.

천사가 처음으로 한 말은 사가랴를 안심시키며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말이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자주 하셨던 일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두려워할 일이 생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께 부르짖어 기도하자.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평안을 주시고 우리의 두려움을 없애 주실 것이다.

그다음 천사는 사가랴에게 그의 간구가 들렸다고 알려 주었다. 천사의 말을 통하여 우리는 사가랴가 자신과 아내에게 자녀를 주시기를 주님께 간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천사는 또한 사가랴에게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라고 명하였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요한(G2491)이라는 이름 역시 히브리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스로 계시며 영원히 계시는 이께서 풍성하게 주시는 분’이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사가랴와 그의 아내에게 자녀 한 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그 자녀를 통하여 자신을 위하여 위대한 일을 하게 하셨다.

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남을 기뻐하리니

사가랴는 자녀를 얻게 되어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며, 그 자녀가 하나님의 선지자가 되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기뻐할 것이다. 세례 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다.

누가복음 1장 58절에 기록된 것처럼, 많은 사람도 세례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였다.

15 이는 저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소주를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세례 요한은 주님 앞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었다. 비록 많은 사람에게 그는 괴상한 사람으로 보였을 수도 있다. 세례 요한의 가치는 하나님께서 친히 그에게 주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선택하시고 그를 사용하여 자신의 일을 이루셨다.

세례 요한이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평생 하나님을 위하여 구별된 사람, 곧 나실인으로 살아갈 것을 의미한다(민수기 6장 3절).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성령이라는 위격으로 세례 요한이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였을 때부터 그에게 하나님의 능력과 은사를 주셨다는 뜻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행하신 일을 우리에게 떠올리게 한다. 예레미야 1장 4절과 5절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

하나님께서 아직 태어나지 않은 태아에게 자신의 성령을 충만하게 부어 주신 일은 바로 그 태아를 거룩하게 하신 일이었다. 여기서 거룩하게 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 위하여 따로 구별하신다는 뜻이다.

이러한 성화는 믿지 않는 남편이나 아내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셔서, 믿는 남편이나 아내와 함께 부부로서 연합하여 살아갈 수 있게 하시는 것과 비슷하다. 고린도전서 7장 14절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그것은 결코 거룩하게 구별된 사람이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다.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것은 오직 믿음으로만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깨끗하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믿고 그분께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것은 자신의 인식과 자유로운 선택의 권리를 행사하는 것을 요구한다.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깨달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하나님을 믿고 받아들이기로 선택하며, 그분께 순종하기로 선택해야 한다.

가톨릭 교리는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가르친다. 이는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로 태어났다는 뜻이다. 일부 가톨릭 신자들도 세례 요한이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아담에게서 나온 모든 사람이 죄에 물들었다고 분명하게 가르친다(로마서 5장 12절):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오직 하나님에게서 나오신 예수님만 죄에 물들지 않으셨다.

마리아 자신도 이렇게 고백하였다.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누가복음 1장 47절)

만일 마리아가 “원죄 없이 잉태되었다면”, 그녀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저희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니라

이 절에서 사용된 “이스라엘”이라는 명사는 야곱을 가리킨다.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자손”이라는 표현을 읽을 때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지어 주신 야곱에게서 나온 후손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하나님 앞에서 우세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창세기 32장 28절).

실제로 세례 요한의 전도를 듣고 죄를 회개하며 자신을 준비하고 그리스도를 기다린 이스라엘 사람이 얼마나 많았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 그러나 사도행전을 읽어 보면, 교회가 세워진 날에 약 삼천 명이 교회에 더해졌다(사도행전 2장 41절). 그들 가운데에는 세례 요한의 설교를 들었던 사람도 많았을 것이며, 세례 요한에게 직접 세례를 받았거나 그의 제자들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도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절에서 사용된 “주”라는 명사와 17절에서 사용된 “그분”이라는 명사는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여기에서 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백성의 주님이시며 하나님으로 불리고 있다.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이라는 칭호를 받으셨기 때문이다. 이것은 시편 45장 6절부터 7절까지에 이미 예언되었으며, 히브리서 1장 9절에서 다시 언급되었고, 예수님께서도 요한복음 17장 12절에서 확증하셨다.

17 저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앞서 가서 아비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리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예비하리라

이 절에서 사용된 “가다”라는 동사는 삶 가운데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먼저 행동하여 예수님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였다.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행하였다. 이것은 세례 요한이 하나님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엘리야와 같은 심령을 가지고 있었으며, 하나님을 위하여 살겠다는 결심과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인도하는 일에서도 같은 심령을 가지고 있었다는 뜻이다.

또한 세례 요한은 선지자 엘리야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세례 요한의 시대에 유대교는 이미 여러 종파로 나뉘어 있었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세 종파는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였다.

이러한 분열로 인하여 부모와 자녀가 서로 다른 종파를 따르게 되면서 가정 안에서도 분열이 생겼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의 사역은 그의 전도를 믿는 사람들이 자신을 낮추고 죄를 회개하며 마음을 준비하고,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하였다.

이를 통하여 부모와 자녀가 서로 화목하게 되었다. 또한 어떤 종파에도 속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거역하는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도 회개하여,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사람들의 지혜를 얻게 되었다.

그들 모두는 한 백성이 되어 그리스도를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게 되었다.

세례 요한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준비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은 이사야를 통하여 이미 예언되었다. 이사야 40장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또한 말라기를 통하여 예언되었다. 말라기 4장 5절과 6절: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그리스도께서 친히 선지자 엘리야가 올 것이라는 약속이 세례 요한을 통하여 성취되었음을 확증하셨다.

마태복음 11장 13절과 14절:

“모든 선지자와 및 율법의 예언한 것이 요한까지니.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찐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이니라”. 

마태복음 17장 12절과 13절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 인자도 이와 같이 그들에게 고난을 받으리라 하시니

그제야 제자들이 예수의 말씀하신 것이 세례 요한인 줄을 깨달으니라”

일부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근거로 엘리야가 다시 태어나 세례 요한으로 환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경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것을 전혀 가르치지 않으며, 불교에서 말하는 이른바 “윤회”에 대해서도 전혀 가르치지 않는다.

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 

“제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겠습니까?”라는 말은 그것이 실제로 일어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는 증거가 무엇이냐는 뜻이다.

사가랴가 그렇게 의문을 제기한 것은 인간의 경험과 지식에 비추어 보면 합리적인 일이었다. 그러나 사가랴는 책망받을 만하였다. 그는 제사장이었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운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이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사가랴와 그의 아내보다 훨씬 나이가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녀를 낳았다.

19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섰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입었노라 

20 보라 이 일의 되는 날까지 네가 벙어리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내 말을 네가 믿지 아니함이어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리라 하더라

사가랴가 의문을 제기한 것은 그가 천사의 말을 믿는 믿음을 갖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우리는 사가랴가 하나님의 성전의 성소 안에 있었으며, 지성소에서도 불과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그는 주님의 천사가 자신에게 나타나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했다.

따라서 천사는 아마도 매우 엄하게 사가랴에게 대답했을 것이다. 사가랴에게 주어진 유일한 증거는 세례 요한이 태어나는 날까지 그가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천사는 자신의 이름이 가브리엘이라고 밝혔다. 천사 가브리엘의 이름이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다니엘 8장 16절이다. 그때 가브리엘은 선지자 다니엘에게 숫양과 숫염소에 관한 환상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그 후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다시 나타났으며, 다니엘 9장 21절에 기록된 것처럼 칠십 이레에 관하여 다니엘에게 말씀하였다.

엘리사벳이 세례 요한을 임신한 지 여섯째 달이 되었을 때, 가브리엘은 다시 나타나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관하여 말씀하였다(누가복음 1장 26절).

우리는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뜻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맡은 천사인 것으로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미가엘은 하나님의 군대를 지휘하는 천사장이다(다니엘 10장 13절, 21절; 12장 1절; 유다서 9절; 요한계시록 12장 7절).

예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께는 열두 군단의 천사가 있다. 그러므로 미가엘은 열두 천사 군단 전체를 지휘하는 천사일 가능성이 있다.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루시퍼(이사야 14장 12절)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을 맡은 천사였으나 타락하여 사탄이 되었다.

가브리엘(G1403 – G1043)이라는 이름은 “하나님의 용사”라는 뜻이다. 미가엘(G4317 – G3413)이라는 이름은 “하나님과 같은 이”라는 뜻이다. 루시퍼(H1966)라는 이름은 “새벽별”이라는 뜻이다.

여호와의 증인 교회는 천사 미가엘이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창조하신 피조물이며, 하나님께서 천사 미가엘을 통하여 다른 모든 피조물을 창조하셨다고 가르친다. 또한 그들은 바로 천사 미가엘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와서 예수님이 되었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천사 미가엘이 예수님이라는 가르침은 없다. 오히려 성경의 여러 곳에서는 예수님께서 바로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가르친다. 요한복음 1장 1절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신 말씀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하나님과 동등하게 스스로 계시는 분이심을 확증한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 앞에 서 있다”라는 말은 천사 가브리엘이 항상 하나님의 보좌 앞에 서서 섬기고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 친히 천사 가브리엘을 보내셔서 사가랴에게 세례 요한이 태어날 것과 그의 이름을 정하는 일과 그의 사역에 관한 복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이러한 일들이 “복된 소식”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것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길을 준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의 성소 안에서 지체함을 기이히 여기더니

22 그가 나와서 저희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 성소 안에서 이상을 본줄 알았더라 그가 형용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벙어리대로 있더니 

아마도 백성은 기도를 마친 후, 사가랴가 성전에서 나와 민수기 6장 22절부터 27절까지에 기록된 주님의 가르침에 따라 그들을 축복해 주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사가랴가 천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매우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나왔을 때 그는 말을 할 수 없게 되어 있었으며, 사람들에게 손짓으로만 의사를 표현하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의 손짓을 통하여 그가 성전에서 환상을 보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였다.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한 제사장 반열의 봉사 기간은 칠 일이며, 그 안식일의 정오 직후부터 다음 안식일의 정오 직전까지 이어졌다. 제사장 반열의 교대는 매 안식일 정오에 이루어졌다.

이 절의 내용은 사가랴가 환상을 본 후에도 자신에게 맡겨진 봉사 기간을 마치기 위하여 계속 성전에 머물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가랴는 자신의 봉사 기간이 시작되는 안식일에, 그 봉사 기간 중 첫 번째로 드리는 향의 시간에 환상을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곧 자신의 봉사 기간이 시작되는 안식일 저녁에 드리는 첫 번째 향의 시간에 환상을 보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24 이 후에 그 아내 엘리사벳이 수태하고 다섯 달 동안 숨어 있으며 가로되 

25 주께서 나를 돌아 보시는 날에 인간에 내 부끄러움을 없게 하시려고 이렇게 행하심이라 하더라 

“그 후에”라는 말은 사가랴가 성전에서 봉사하는 기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를 의미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가랴의 아내가 임신하였다.

엘리사벳이 왜 다섯 달 동안 숨어 지냈는지는 우리가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숨다”(G4032)라는 동사는 완전히 감추거나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는 것을 의미한다. 아마도 엘리사벳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남편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한적한 곳으로 물러나 있기를 원했을 것이다.

“주께서 나에게 이렇게 행하셨다”라는 말은 주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은혜를 베푸셔서, 내가 바라던 소원을 이루어 주시고 임신하게 하셨다는 뜻이다.

“주께서 나를 돌보아 주신 날들”이라는 말은 주께서 나에게 임신하게 하시고, 내가 임신한 상태를 돌보아 주신 날들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민족에서도 자녀가 없는 아내들은 사회로부터 조롱을 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들은 복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여겨졌으며, 남편에게 대를 이을 자녀를 낳아 주지 못하여 남편의 집에 수치를 안겨 주는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들은 자신을 알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그러므로 엘리사벳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임신하게 하신 것이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당하던 수치를 없애 주신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두 가지 중요한 것을 배울 수 있다.

첫째, 우리가 진심으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간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어나도록 허락하시는 모든 일은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미리 정하신 선한 일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에게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여기에는 어머니의 태중에서 죽은 사람이나 어린 나이에 죽은 사람, 또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포함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마음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진심으로 하나님께 감사하기만 하면 된다.

성령께서 우리를 주님의 말씀의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를 원한다(요한복음 16장 13절). 주님의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한다(요한복음 17장 17절).

평강의 하나님, 곧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영과 혼과 육이 온전히 거룩하게 되어 흠 없이 보존되도록 지켜 주시기를 원한다(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 그리하여 우리가 사랑하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하게 되기를 원한다. 아멘!

Huỳnh Christian Timothy

Huỳnh Christian Priscilla